아내에게 잔소리 듣는 나의 관용어가 있다. 무심코 사용하면 바로 지적하며 ‘인제 그 말은 그만하시지요’라고 한다. ‘실컷’이라는 부사이다. 이 말은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낱말이지만 문장 안에 들어가면 의미가 달라진다.
‘맛있게 실컷 먹어야지’ ‘실컷 놀자’ 등이다. ‘실컷’은 특히 음식을 먹을 때 자주 사용한다. 이전에는 뭔가 부족해서 제대로 못 먹었다는 뉘앙스가 깔려있고 식탐을 나타내기도 한다.
‘실컷’ 외에도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 또 있다. 누가 어떤 음식을 지칭하며 ‘000 좋아해?, 잘 먹어?’라고 물으면 ‘잘 먹어’ 혹은 ‘안 좋아해’라고 대답하면 될 것을 ‘없어서 못 먹어’라고 말한다. ‘실컷’과 마찬가지로 쪼들렸거나 가리지 않고 먹던 과거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없어서 못 먹지’라고 말하는 내게 어린 딸이 일침을 가한 적이 있었다. ‘아빠! 무조건 없어서 못 먹는다고 하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왜 필요해?’ 이 말에 대꾸하기가 쉽지 않았다.
5남매의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나 형과 누나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먹을 게 늘 부족했고 경쟁에서 밀리면서 ‘질(質)보다 양(量)’을 선호하는 후천적 결핍유전자가 생겨난 듯하다. 이 유전자는 시대가 변했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로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맛의 즐거움보다 위장의 채워짐을 최고의 만족감으로 인식하는 소임을 수행한다.
도태되지 않는 결핍유전자로 인해 식사 시간이 늘 부담스럽다. 심리적 결핍을 잊기 위해 천천히 먹는 식사법을 생활화하고 있지만 청산이 쉽지 않다. 그나마 체면과 건강이라는 현실 요인이 결핍유전자를 억누르고 있어 다행스럽다.
20대의 우리집 아이들은 나와 음식문화가 다르다. 부족함 없이 먹고 자란 것을 고려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게 그들의 식습관이다. ‘저렇게 먹어도 살 수 있을까?’라고 걱정이 될 만큼 적게 먹는다. 어쩌다 폭식한다 싶으면 편식이다.
그래서 세대 차이를 느끼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삶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원 즉, 음식문화가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곧바로 마음을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