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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도 재밌었다

방아깨비

by 서람


한여름의 풀숲은 곤충 천지다. 살짝만 풀을 헤쳐도 숨어 있던 온갖 곤충이 후다닥 튀어나온다.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게 방아깨비다. 다른 곤충보다 몸집이 훨씬 크고 뾰족한 머리에 긴 뒷다리를 가졌다. 마치 곤충 세계에서 잘 훈련된 운동선수 같은 모습이다.


방아깨비는 내가 어릴 적 진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곤충이다. 친구와 다툰 후 어색함을 해소하고자 할 때 꼭 필요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방아깨비를 풀숲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제일 큰 녀석으로 잡았다. 그리고 뒷다리를 포개서 쥐고 있으면 위아래로 몸을 움직인다. 말 그대로 방방 떴다. 사람들은 이 행동을 방아 찧기에 비유해서 방아깨비라는 이름이 생겼다.

유선형의 몸체를 움직이다 보니 머리를 숙이는 모습도 보인다. 아이들은 ‘아쭈 제법 인사도 잘하네!’라며 좋아했다. 물론 방아깨비는 몸부림치면서 손에서 탈출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흥분한 아이는 그걸 이해하는 마음이 들어설 틈이 없다. 방아깨비의 그런 행동은 친구에게 미안함을 대신 전하는 인사치레가 되었다. 어설프고 엉뚱했지만, 나름 진심이 담긴 마음 언어였다.

그 시절, 잠자리와 더불어 즐겨 채집하던 것이 방아깨비다. 잡기도 쉬웠고, 잠깐의 놀잇감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놀다 보면 긴 뒷다리 하나가 잘 분질러진다. 갑자기 균형을 잃고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면 놀이의 흥미가 사라지고 마음 한구석이 찌릿해졌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풀밭에 다시 놓아 준다. ‘다시 안 자란다는데 괜찮을까’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렇게 아이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생명의 소중함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방아깨비는 꽤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붙잡혀 ‘방아 찧는 곤충’이 되었고, 아이들의 감정 놀이 도구가 되었다. 인간이 붙인 이름과 역할이 그 존재의 본질을 흐린 셈이다. 하지만 그 곤충을 통해 아이들은 감정과 경험을 투영하며 의미를 발견했다.

다음은 방아깨비를 붙들고 누가 더 오래 방아를 잘 찧나 친구와 시합하며 부르던 구전동요이다.


『방아방아 방아깨비 아침거리 찧어라

우리 아기 흰 떡방아 네가 대신 찧어라

방아방아 방아깨비 저녁거리 찧어라

방아방아 방아깨비 네가 대신 찧어라

옆집 아기 보리방아 네가 대신 찧어라』


혹독하게 방아를 찧게 하고, 동시에 ‘찧어라~ 찧어라~’를 신나게 열창하던 노래였다. 일종의 성장 놀이었던 그 모든 과정은 아이들 스스로 느끼고 깨닫는 자연의 가르침이었다. 풀숲에서 미물(微物)과 체험한 그 여름날의 추억은 진지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큰 교과서였다.


방아깨비는 메뚜기목(目)에 속하며 생김새나 행동이 깔끔해 ‘초원의 신사’라고도 불린다. ‘깨비’의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그냥 곤충을 나타내는 말로 해석된다. 도깨비, 진눈깨비에 붙는 ‘깨비’와는 어원에 차이가 있다.

가을 짝짓기 후 산란하고 생을 마친다. 흙에서 월동한 알은 초여름에 부화해 성충이 된다. 수컷은 작고 행동이 빠르며 날개를 부딪쳐 따닥따닥 소리를 내서 ‘따닥개비’라고 불린다. 덩치가 큰 암컷은 ‘왕치’라 부르는데 느림보라 아이들에게 잡혀 고초를 겪는 게 바로 암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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