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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 감정의 롤러코스터

바퀴벌레

by 서람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은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기쁨, 슬픔, 분노, 공포, 놀람, 혐오이다. 인간의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 감정들은 누구나 삶의 희로애락에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문화,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보편적인 표정으로도 구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곤충 중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가장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감정을 들쑤셔놓는 벌레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몸이 반응하고 실제 모습을 보면 더욱 외면하고 싶은 바퀴벌레가 그 주인공이다.


어느 늦은 밤. 우리 집 화장실 문을 열었다. 스위치를 눌러 등을 켜자마자 바닥에 있던 검은 물체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바퀴벌레라고 인식된 순간 배수구 구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 찰나에 내 마음은 강렬한 변화가 일어났다. 여러 감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소용돌이친 것이다.

예기치 못했던 순간의 공포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정체를 인식하는 순간 놀라움으로 몸은 얼음이 되었다. 그 생김새와 움직임에서 느끼는 혐오스러움이 온몸의 피부를 오그라들게 했다. ‘왜 하필 우리 집에?’라는 짜증이 분노의 외침으로 나타났다. ‘저렇게 보잘것없는 미물에게 내가 이렇게밖에 대처할 수가 없나’라는 무력감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시야에서 사라질 때, 안도감의 기쁨이 살짝 스쳤다. 여섯 가지 기본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 시간은 불과 3초 정도에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처럼 생활 주변에서 가장 불쾌한 곤충 1위라 할 수 있는 바퀴벌레는 인간의 감정을 심하게 자극한다. 주로 부정적인 감정을 더 강하게 자극하며 그중에도 혐오감의 영향력이 최고조이다. 단순히 외형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두운 곳을 향하고, 예측 불가능한 속도로 달린다. 그래서 인간은 바퀴벌레를 본능적으로 혐오한다.

‘한 쌍의 바퀴벌레’라는 말도 있다. 비하적이며 조롱 섞인 말이다. 비호감 커플이 끈질기게 붙어 있는 모습을 비꼴 데에 사용한다. 한 마리도 혐오스러운데 굳이 한 쌍을 넣는 건 바퀴벌레에 대한 혐오를 극대화하려는 풍자이다.


인간은 바퀴벌레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치명적인 혐오감을 느낀다. 그래서 두둔할 가치가 없지만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바퀴벌레 처지에서 바라본다면 다른 모습이 있다. 그들은 인간이 조성한 틈바구니에서 살아보겠다고 기어다니다 눈에 띈 죄밖에 없다. 어쩌면 재빨리 도망가느라 그들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더구나 모기나 파리 등 다른 해충들과 달리 사람을 물리적으로 해치지 않는다. 전투력이 거의 없어 천적에게 꼼짝 못 하는 동네북 신세이다. 오로지 적응력과 번식능력으로 종족을 유지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바퀴벌레는 바퀴목(目)에 속한다. '바퀴벌레'라는 이름은 움직임이 마치 수레바퀴처럼 빠르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영어명에 대한 해석은 ‘빛을 피하는 벌레’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수억 년 전부터 존재했다. 방사능이나 독성물질에 강한 내성이 있어 극한 환경에도 살아남는 생존력이 있다. 최근에는 도시 위생 관리의 지표가 되었다. 바퀴벌레의 존재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현실 상황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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