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느림의 반격

잠자리

by 서람

‘잠자리 잡기 시합’


지금은 생소한 말이지만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장면이다. 그 당시 남자아이들의 놀이였던 곤충채집에서 가장 흔히 만난 대상이 잠자리였다. 가을 하늘을 수놓았던 수많은 잠자리를 친구들과 누가 빨리 그리고 많이 잡느냐가 관심사였다.

수풀에 앉아 있는 잠자리에게 접근하면서 게임은 시작된다. 오른손으로 잡아 날개를 접어 왼손 손가락 사이에 끼운다. 아이의 작은 손이라도 엄지와 검지 사이에 한 마리, 그리고 검지와 중지, 중지와 약지 사이에 각각 두 마리씩,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한 마리까지. 최대 여섯 마리를 한 손안에 쥘 수 있었다.

그렇게 공들여 잡았지만, 손가락을 잘못 움직여 한 마리가 도망갈 때가 있다. 아차 하는 마음에 다시 잡으려고 양손을 내밀었다가 다른 잠자리까지 모두 놓쳐 버린다. 이쯤 되면 어린 마음에 오기가 발동하고 잠자리 추격전은 더욱 치열해졌다.


‘잠자리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라는 속담이 있다. 비 오기 전에는 습도가 올라가 작은 날벌레들이 날기 힘들어진다. 이때 포식자인 잠자리는 그들을 잡으려고 낮게 날게 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잠자리는 공중 사냥꾼이다. 머리에 툭 튀어나와 넓은 시야를 볼 수 있는 겹눈을 활용하여 정확히 추적하고 그 벌레들을 공중에서 낚아챈다.

그러나 완벽한 로봇 같은 잠자리도 어느 순간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어린아이에게 덜컥 잡혀 버린다. 무엇이 이토록 빠르고 눈이 발달한 존재를 아이의 손에 잡히게 만든 걸까? 아이는 빠른 몸놀림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다가가서 손을 뻗었을 뿐이다.

세상일은 종종 의외의 방향으로 흐른다. 빨리 자라는 나무는 대개 단단하지 못하고, 가장 예리한 것은 오히려 쉽게 부서진다. 빠름은 분명 능력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불완전함의 징후이기도 하다. 따라서 잠자리는 넓은 시야와 민첩함으로 빠른 몸놀림을 갖는 대상에는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느리게 다가오는 움직임에는 오히려 둔하다. 결국 빠름이 느림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도 빠르게만 반응하다가는 정작 중요한 느린 신호를 놓치기 쉽다. 느림에는 깊이와 여유가 있다. 천천히 먹는 밥이 소화가 잘되고, 천천히 설명해야 이해가 잘 되듯 느림에서만 느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삶의 여행에서 가끔은 일부러 느려지는 것도 괜찮을듯싶다.


얼마 전 동네 아이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옛 추억이 생각나서 반가운 마음으로 내가 말을 걸었다.


“와! 잠자리채네. 얘들아, 어디 가서 잠자리 잡을 거니?”

“잠자리 잡을 거 아닌데. 야구장 가서 홈런볼 받을 거예요”


그렇구나. 세상이 변했다. 착각하지 말자. 같은 잠자리채지만, 그 활용도는 달라져 있다. 나의 추억은 지금 아이들의 시간과는 다른 데에 있는 듯했다.


잠자리는 잠자리목(目)에 속한다. 4개의 큰 날개를 따로 움직이는 탁월한 비행 능력을 갖췄다. 공중에 멈추거나, 수직으로 오르내릴 수 있다. 방향 전환과 속도 조절이 가능하며 새도 할 수 없는 후진 비행도 가능하다.

잠자리 이름의 어원은 문헌에서찾을 수가 없다. 앉은 자세에서 날개를 펼치고 마치 엎어져 잠자는 모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영어명은 ‘Dragonfly’로 몸이 용을 닮았다고 정해졌다.


KakaoTalk_20250619_000658036.png


keyword
이전 11화내 안에 둘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