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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행기 Oct 05. 2020

제주와 가스

흑백의 제주, 서른둘

제주의 서쪽 작은 어촌에는 거대한 가스기지가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빨간등대만 홀로 서서 덩그러니 파도만 만났던 조용한 포구였다.


지금 이곳은 제주에 새로운 가스 공급 전진 기지로 변신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 들어설 때부터 걱정과 불안감을 내비쳤고, 실제로 현수막까지 걸고 반대에 나섰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갑자기 마을에서는 가스기지에 대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다만 이러쿵저러쿵 별별 소문들만 무성할 뿐이고,

몇 달 전 치른 이장 선거에서는 마을의 LNG 가스 공급이 주요 공약으로도 나왔다.


그동안 제주는 LPG 방식으로 가스를 사용해왔다. 다른 지역의 도시가스보다는 부담이 큰 편이다. 특히 겨울철 난방을 가스로 하는 집들은 더 많은 돈이 나가야만 했다.


가스기지가 들어서면서 이제 제주도도 다른 지역처럼 도시가스 형태의 LNG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시작일 뿐, 제주도내 아주 극소수만 공급을 받고 있다.


정작 가스기지가 있는 마을에는 언제부터 공급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


LNG가 들어오면 기존 LPG보다 저렴해질 줄 알았으나, 현실은 오히려 더 높은 가격을 부담해야 한다.

사용자가 아주 많아져서 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인데...


수백억원을 들여서 만든 공간이 수백억원을 더 가져가야, 그나마 요금이 내려갈 '가능성'이 발생한다.


제주도내 곳곳에는 LNG가스배관을 설치하는 중이고, 이미 공급 받은 사람들은 언제 내려갈지 모를 다소 비싼 가격을 부담해야만 한다. 거기다가 마을에서는 계속 우리도 가스를 달라고 목소리만 높일 뿐 어떠한 속시원한 대답도 못 받아낸다.


분명 제주에 사는 사람들이 좀 더 살기 좋으라고 만든 시설이, 어째서 더 무거운 짐이 되어야 하는 걸까?


제주는 가스를 얻은 걸까, 짊어진 걸까?


매일 옥상에서 가스기지를 한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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