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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비행기 Mar 06. 2022

말 한마디의 마음

일상의 순간들(1)

어젯밤 11시 40분경,


끼이이익, 쾅! 끼이이익-!


집 밖에서 굉음이 울려퍼졌다. 보통 이 시간쯤이면 우리 동네 골목은 고양이 발소리마저도 소음으로 느껴질만큼 적막감에 휩싸인다. 이 정도로 큰 소리라면 대형 폭발과 비교해도 손색 없을 정도였다.


재빨리 집 밖으로 나가보았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파이어 블루 색상의 경차 한 대. 이미 우리집 맞은편 담벼락에 세워진 봉고차 앞부분을 들이박은 상태였다. 다시 후진하더니 옆집 돌담에 강하게 부딪쳤고 다시 바퀴를 돌려 맞은편에 세워진 또 다른 승용차를 들이박고서야 멈췄다. 그것도 잠시, 후진등이 들어오더니 앞바퀴가 왼쪽으로 트는 게 아니던가. 대략 각도를 볼 때 이대로면 우리집 앞에 세워진 내 차와 충돌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다른 거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얼른 달려가서 운전석 쪽 유리창을 두드렸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운전석과 조수석엔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있었는데 양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고개도 두리번두리번 초점을 못 잡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뭐하시는 거예요!" "내리세요!" "시동 끄세요"를 외쳤다. 그들으 그저 나를 흘끔 보면서 각자 스마트폰으로 어딘가 전화하기 바빴다. 

"경찰 부릅니다. 빨리 내리세요!"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질 때쯤, 맞은편 집에 사는 아저씨가 천천히 나와주셨다. 자신의 차를 보더니 흠칫 놀란 얼굴이었으나 이내 운전석으로 다가가더니


다친 덴 없으세요?

 먼저 차량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그제야 차문이 열리고, 진한 술냄새가 콧속으로 깊게 파고 들었다. 이거, 장난 아니구나. "음주운전이네, 큰일날 사람들이네!" 내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 커져만 갔다. 그 와중에 조수석에 앉은 분은 "수리비는 드릴 테니, 봐주시면 안 돼요?"라며 또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경찰 불러요, 경찰!


이웃집 아저씨에게 다그쳤다. 전화로 경찰을 부르자마자 계속 수리비만 주겠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그 사이 주변에서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고, 가해 차량이 골목길을 가로로 막고 있던 터라 지나가는 차도 오도가도 못 하게 막혀 있었다. 차량을 정리하는 사이, 가해차량 안에 사람들이 사라졌다. 저 멀리 또 다른 골목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도망가면 더 난처해질 텐데

이웃집 아저씨는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빨리 잡으러 가야 한다고 한마디씩 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를 않았다. 결국 내가 전속력으로 뛰어갔고,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도대체 왜 따라오시는 건데요?

저희 도망가는 거 아니거든요?

저희 오빠랑 통화 좀 해보세요


그들은 눈을 크게 부라리며 따라온 내게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범이고 사고 수습도 안 하고 무조건 도망가면 나중에 너무나도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름대로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달리기 졸라 빨라, 캬캬캬

여전히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은 그들은 통화 상대방과 웃으며 달리기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 이상 말은 꺼내지 않고 손짓으로 사고 현장까지 다시 안내해주었다. 신고 전화한지 20분쯤이 되었으나 경찰은 여전히 오지 않았고, 동네 사람들만 하나둘 더 늘어났다.


내 친구는 보내주세요 운전은 저만 했잖아요.


운전자는 동승자의 등을 떠밀며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했다. 이를 제지하자 눈을 다시 한 번 부라리라 이 동네 사람임을 재차 강조했다. 도망가는 자신을 억지로 데려와서 협박한다며 녹음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더 언성이 높아질 뻔했으나 그제야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조사 과정에서도 운전자는 저 차는 안 박고 차엔 혼자만 있었다는 둥 상황을 축소하려고 했으나, 정작 피해자인 이웃집 아저씨는 그 말을 다 받아주었다. 


날씨도 추운데 얼른 이 친구들 따뜻한 곳에서 모셔요. 얼마나 놀라고 겁났을 거야

 

 다시 한 번 더 주변 사람들의 언성이 높아지려고 할 때, 이웃집 아저씨가 경찰관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운전자와 목격자 겸 동네 사람들은 각자 꺼내고 싶었던 목소리를 급히 되삼켰다.


골목에는 사람들의 말이 잠시 사라졌다. 사고 차량은 안전한 곳을 옮겨졌고, 현장조사도 빠르게 마무리되고 목격자를 자처했던 동네사람들도 하나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했다. 내게 뱉은 말 한마디는 무엇에 초점을 맞췄던 것일까.

운전자와 이웃집 아저씨의 말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들일까.


같은 상황


각자 다른 한마디


남겨진 마음


모든 것이 한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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