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네요.
저는 세상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이
삶의 스승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야 글이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오늘따라 문득 떠오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학 문예창작과에서 만났던 교수님 두 분입니다.
한 분은 소설을 가르치셨습니다.
처음엔 저에게 큰 관심이 없으셨죠.
그러다 『그 녀석의 몽타주』 이야기를 전해드리자
직접 얼굴 보며 이야기하자며 시간을 내주셨어요.
서울에서 뵙고 책 이야기도, 작가로서의 가능성도 나눴습니다.
“살아남는 게 중요한 거야.
종이비행기도 오래 살아남아, 그게 최고야.”
교수님의 말은 선배 작가로서의 조언이었고,
그땐 참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살아남아서 최고의 작가가 되겠다.’
다짐도 했죠.
하지만 얼마 뒤,
제가 계약한 출판사에 교수님이 따로 연락을 하셨다는 얘기를 편집자를 통해 듣게 됐습니다.
“혹시 ○○○ 작가님 아세요?
종이비행기 작가님 교수님이라던데.
저희에게 찾아오셔서 따로 가르치는 제자들의 원고도 출간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혹시 알고 계셨어요?”
전혀 몰랐던 이야기였습니다.
그제야 ‘수제자들’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도 알게 되었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죠.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도
‘나는 교수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하는 생각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또 한 분은 동화를 가르치시던 교수님입니다.
수업은 매우매우 냉정했고,
처음엔 “공감 능력이 없으신가?” 싶은 마음도 들었죠.
그리 가까이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졸업 이후 오히려 더 자주 연락을 주셨어요.
카톡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안부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죠.
“편의점 이제 그만두고 어디 취직해서 글 써라.”
“신문사, 잡지사에 지원해봐라.”
“영어도 좀 배워봐라.”
“작가가 명함도 없이 다니면 되냐.”
그땐 그냥 잔소리로만 들렸습니다.
제주에 오셨을 때는 일부러 저를 불러 함께 답사를 다녔고,
그때도 솔직히 귀찮았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 주변에 있는 소재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뤄야 할지
수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꿀팁을 알려주신 시간이었더라고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삶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교수님은 묵묵히 응원해주시고
잔소리는 아낌없이 보내주셨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지금도 종종 연락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온갖 핑계를 대서
스벅 기프티콘 하나를 보내드렸네요.
교수님의 기대만큼
대단한 작가는 아니지만,
제 페이스대로 꿋꿋하게 글을 써올 수 있었던 건
그 ‘잔소리’ 덕분이기도 합니다.
문창과를 누군가에게 쉽게 권하지는 않지만,
그 교수님을 떠올리면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작가로 살아가며
한 번쯤은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는
좋은 선배이자, 동지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되니까요.
여러분에게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스승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