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려다가 이름부터 외우고 있다

by 종이비행기

강의 하나 준비하는데, 소설 쓸 시간도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보면, 교재 하나 정하고, 같이 읽을 소설 한 권 고르고, 숙제 내주고 토론하고 발표하면
어찌어찌 2시간은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소설을 배우러 오신 분들이 알아서 읽고, 분석하고, 발표까지 척척 해주실 거면,
굳이 나나 다른 사람의 수업에 시간을 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강의 준비를 할 때 학교에서 배운 이론들, 내가 직접 쓰면서 겪은 시행착오들, 그리고 지금 이 수강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 고민하며 자료를 고르고, 순서를 짜고, 실습을 만든다.


어떨 땐 수업 내내 그냥 얘기만 나누고 웃다가 끝나는 날도 있다. 그 내용 자체가 소설 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사안들이었다. 이론을 외우는 것보다 쓰면서 해야 할 것을 이미 수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었있으니까. 그 두 시간 동안 무언가 '가능성'이 일어나려면, 보이지 않게 준비해둬야 할 게 정말 많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내가 수업 전에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건 이름이다.

수업 때 일부러 학교처럼 출석을 부르기도 하고, 실습 자료에 이름을 적게 하기도 하고,
수업 중간중간 "○○쌤", "○○ 선생님" 하고 부르기도 한다.
조금 더 친근해지기 위한 방식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름이 가진 힘을 믿기 때문이다.


이름이 있다는 건,

그 존재가 살아왔던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 세계를 느끼려면,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된다.


이름을 부르면 눈빛이 바뀐다.
그 순간,
심연에 묻어 자신도 잊고 있었던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열린다.


그래서 난 최대한 빨리 이름을 외우려고 애쓴다.
하나둘 이름을 외우다 보면…


아차, 또 내 소설을 못 쓰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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