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끼리 서로 친하다?
“어, 혹시 그 작가님 아세요?”
모른다. 진짜 모른다. 같은 방송국이라 해도 이름만 알면 많이 아는 편이다. 라디오 작가가 방송국에 하루 종일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 프로그램이 아니면 다른 제작진과 교류할 일도 거의 없다.
물론 같은 시간대 앞뒤 프로그램과는 교대하면서 인사를 나누다 친분이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그렇게 친한 작가와 MC도 있지만, 딱 그 정도다. 그래서 저녁 프로그램을 맡은 내게 “오전 프로그램 작가랑 친하냐”고 물으면 난감하다. 얼굴 한 번 보기조차 힘든 사이니까.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밤 프로그램을 맡은 작가가 갑자기 잘린 것이다.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편성국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인수인계할 시간도 주지 않고, 하루아침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거기다 남은 작가들에게는 불리한 계약서를 내밀기까지 했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나는 오전부터 밤, 주말 프로그램까지 담당하는 작가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카페에 빙 둘러 앉은 10명 남짓의 작가들. 서로 얼굴도 잘 모르니 어색한 기운이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나누자, 생각은 제각각이었다. 방송국 출근 자체가 싫다는 작가,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작가, 원고료 인상 요구, 노조 가입 후 투쟁 경험… 각자만의 경험과 불만만 쏟아졌다. 결국 결론은 나지 못했고, 오히려 나에게 개인적인 하소연만 늘어갔다.
그 과정에서 정작 부당하게 잘린 작가에 대한 대응은 없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은 이후에 다른 작가들에게 마음을 크게 내어줄 수 없었다. 동료애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은 처지라서 뭐라도 할 줄 알았다. 누군가 하루아침에 자리를 잃으면, 자신까지 위험해질까 전전긍긍하는 게 전부였다. 아마 내 모습도 다른 이들에게는 불의에 침묵하는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방송작가의 99% 이상이 프리랜서 신분이다.
사실상 개인 사업자다 보니, 생존이 협력보다 먼저다. 그 현실이 씁쓸했다.
하루 아침에 갑자기 사라지는 작가들을 보면서 결국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방송작가노조 가입원서에 내 이름을 적어냈다. (방송작가 노조 이야기는 따로 정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