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날부터 성경을 펼쳤다. 매일 밤이면 아내와 딸, 셋이서 모여 한 절씩 나눠 읽었다. 몇 장씩 천천히. 마침 교회에서 성경 통독표도 나눠주었으니, 이대로만 매일 지켜간다면 마지막 날에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구절을 읽게 될 것이다.
난 모태신앙으로 평생을 매주 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없었다. 물론 중간중간 시도는 했다. 하지만 성경 특유의 난해한 문체와 어휘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렸고, 읽다 보면 신앙심보다 먼저 내 지적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혼란 앞에서 번번이 책을 덮었다.
이번에는 각오가 조금 다르다.
이해하려 들기보다, 우선 읽기로 했다. 백 퍼센트 머리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으니, 글자 그 자체를 충실히 따라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성경을 다 읽는다고 해서 믿음이 남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성경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책이 그렇다. 많이 읽고 많이 안다고 해서 사람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설픈 이해와 자기화된 해석이 세상을 해롭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성경 역시 그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독서의 핵심은 최대한 해석을 덜어내고, 있는 그대로 끝까지 읽어보는 데 있다.
그럼에도 의문은 벌써 쏟아진다.
어째서 족보는 반복해서 나열되는지, 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와는 왜 인간보다 더 쪼잔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는지. 이런 질문들이 자꾸 고개를 든다. 하지만 지금은 붙잡지 않기로 한다. 처음과 끝까지 다 읽어봐야, 그 질문들에 대해 말할 자격이 생길 것 같아서다. 어쩌면 다 읽고 나서도 더 깊은 미궁에 빠질지도 모르지만.
해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쓰는 사람이다. 성경 구절을 읽다 보면 자꾸 저자의 의도가 떠오른다.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쓴 책이라기보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기록된 텍스트가 아닌가. 같은 사건도 기록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무엇보다 원서가 아니라 번역의 번역, 또 그 번역을 거친 결과물이다. 과연 원뜻에 얼마나 가까운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라도 읽게끔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왜 이렇게 쉽게 이해되지 않도록 쓰였을까. 어떤 대목에서는 이 이야기를 앞부분에 배치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구성상의 생각도 든다.
야심차게 성경을 끝까지 읽겠다고 다짐했는데, 시작부터 이런 불온한 마음들이 스며든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는 끝까지 가보려 한다. 이해하지 못해도, 불편해도, 질문이 쌓여도. 읽는다는 행위 자체를 끝까지 밀어붙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