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가면,

by 종이비행기

“부산에 가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부산에 가면. 에코브릿지가 만들고 최백호가 불렀다.


이상하게 이 노래는 첫 소절부터 코끝이 시큰해진다. 유튜브 댓글을 읽다 보면, 각자의 부산이 저마다의 얼굴로 쏟아진다. 그중에서도 “내가 바로 부산이었다”는 문장은 한동안 눈길을 붙잡아 둔다.


부산.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 잠시 살았던 고향이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의 도시겠지만, 내게 부산은 낭떠러지 같은 공간이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좀처럼 풀린 적이 없었다. 살던 집을 떠나야 했고, 소중한 사람과 헤어져야 했으며, 무엇 하나 평안함을 건네준 적이 없었다. 온 가족이 갈 곳이 없어 환영이 보일 때까지 밤새 걸었던 기억도 있고, 아무도 없는 빌딩 엘리베이터를 은신처 삼아 밤을 보낸 적도 있다. 부산역 근처에서는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죽일 듯이 쫓아와 골목골목을 숨 넘어가듯 뛰어다닌 적도 있었다. 어린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든 빨리 떠나고 싶었다. 다시 돌아올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재회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부산에 가면>을 눈 감고 듣다 보면, 서른 해가 훌쩍 지난 어느 날의 내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시도 때도 없이 종이 울리던 구포 철도 건널목, 그 근처 시장에서 팔던 콩국. 여러 집이 함께 마당을 쓰던 잠시 머물렀던 집.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야 닿을 수 있었던 학교. 백 원만 달라며 손을 내밀던 형들이 상주하던 오락실. 아버지가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과 함께했던 옛터 술집. 야간 근무로 밤새 불이 꺼지지 않던 사상의 한 공장. 그 앞에서 외상으로 밥을 먹던 백반집. 여름보다 겨울에 더 자주 갔던 해운대. 조선호텔 앞 갯바위에서 잡았던 작은 꽃게들. 해운대 31번 종점 앞 경주할매국밥, 그 옆의 리베로 백화점. 서면 롯데백화점 맞은편의 할매 회국수와 그 근처 포장마차에서 팔던 고래고기. 아버지와 친했던 용달이 아저씨, 코띠 아저씨. 통일호를 타던 부전역과 부산진역. 순서도 없이, 이유도 없이 기억의 조각들이 쏟아진다. 그 속에는 알 수 없게 웃었던 순간들도 섞여 있다. 다만,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나는 그 시간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 주면 가족과 함께 부산에 며칠 다녀온다. 아내와 딸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부산행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깊었다. 그때의 나를 마주치게 될 것만 같아서.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흘렀고, 부산이라는 공간도 많이 달라졌으며, 나 역시 그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번에는 도망치듯 떠나는 부산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으로 다시 담아보고 싶다.


그 도시를, 그리고 그때의 나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마주해보려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VcnD6Q3DAu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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