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수정구청 환경위생과! 1989년 9월 11일, 공직 생활의 첫 부서로 배치되었다. 환경보호계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두 개의 구청이 신설되어 임대 건물에서 업무를 보았다. 처음에는 수원에 있는 누나 집에서 출퇴근했다. 버스를 타고 용인 풍덕천(현재 수지)을 지나, 신도시 조성이 막 시작된 분당을 거쳐야 했다. 대부분 비포장도로였기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지각을 걱정해야 했고, 비상 상황도 잦아 퇴근이 늦는 날이 많았다.
당시엔 ‘공복(公僕)’이라는 사명감만 강조되었고, 시간 외 수당 같은 개념은 전혀 없었다. 결국 3개월 만에 구청 맞은편에 작은 월세방을 얻어 이사하게 되었다. 환경 업무는 초창기라 체계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출근하자마자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사무실 청소부터 시작했다. 현장에서는 환경 법령이 기업들의 인식보다 앞서 있었기에 법 적용에 어려움이 많았다. 점검을 나가면 대기, 소음, 진동 배출 무허가 시설물이 자주 적발되어 고발 조치해야 했다. 고발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대부분 영세사업장이었고, 법규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남한산성 자연환경을 관리하기 위해 안내 시설물을 점검·정비하고, 각종 단체회원을 동원해 정기적으로 실시한 자연정화 활동은 그나마 보람 있고 흥미로웠던 업무였다. 팀별로 타자기 한 대가 전부였다. 기안은 손으로 작성해 결재를 받은 뒤, 기능직 여직원이 타자기로 시행문을 작성하면 문서계에서 직인을 날인하고, 총무과 우편함에 넣어 처리하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직원들은 여유 시간에 잡담하거나 글씨 쓰기 연습에 몰두하였다. 글씨체가 좋은 사람이 승진에 유리했던 때였다. 게다가 한자를 혼용해 문서를 작성하면 품위 있는 문서로 인정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위생계 덕분에 음식점 등의 허가를 내준 후 초대받아 푸짐하게 대접받는 일이 자주 있었다. 자취하는 총각이었던 나에게는 꽤 고마운 일이었다.
두 개의 구청이 새로 생기면서 신규직원이 대거 채용되어, 처녀·총각이 많았다. 일과 후 여러 명이 어울리거나, 가끔 설레는 일대일 만남을 갖기도 했다. 민주화로 접어든 과도기에는 잦은 시위, 산불 대기, 일과 후 주차위반 단속, 불법 포장마차 및 쓰레기 투기 단속 등 비상근무가 많았다.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대통령의 ‘10·13 특별 선언’으로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면서 위생업소에 대한 야간 단속 등 주야가 바뀌는 근무가 이어졌다. 시군과 교체 단속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졌다. 당시는 뭔지도 모르고 단속에 임했다. 지나고 나니 세상이 변해가는 과도기 과정이었다.
공무원은 “땡 출근, 땡 퇴근”이라는 말을 흔히 들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아침의 첫 빛을 맞으며, 아직 낯선 거리 위에 마음을 세우고 출근이라는 이름의 문을 활짝 열며, 공직이라는 여정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