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정책의 전환점 1991년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환경으로 인한 재난으로, 수질오염의 심각성과 환경의 관리 중요성을 국민에게 각인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전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고, 환경정책 방향과 시민운동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사고는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의 두산전자 공장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다. 1차 유출은 3월 14일 밤부터 15일 새벽까지 약 30톤의 페놀 원액이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을 통해 대구 다사 취수장으로 흘러들었다. 2차 유출은 4월 22일, 약 2톤의 페놀이 다시 누출되었다.
대구 시민들이 수돗물에서 악취를 느끼고 두통, 구토, 유산 등의 증상을 호소하면서 사태는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었다. 당시 정수장에서는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염소 소독을 강화했는데, 염소가 페놀과 반응해 클로로페놀이라는 더 강한 악취 물질을 만들어내며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 사건은 언론의 특종 보도로 알려졌으며, 두산그룹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었다. OB맥주를 비롯한 주요 제품의 매출이 급감했고, 두산전자에는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이 사건 이후 환경처는 환경부로 격상되었고,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다. 지방자치단체에는 환경 부서가 설치되었으며, 환경직 공무원이 대폭 증원되었다. 시민 환경단체의 결성과 활동도 전국적으로 강화되었고, 수돗물에 대한 불신으로 생수와 정수기 시장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은 단순한 사고를 넘어, 기업의 환경 책임, 정부의 대응체계, 시민의 권리의식이 맞물려 변화의 물꼬를 튼 사건이었다. 이후 수질오염 사고에 대한 대응체계는 강화되었고, 환경행정은 보다 전문화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건물별로 오수처리시설을 운영하던 정책에서 공공이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변화하면서, 팔당호 상류에 하수처리장 건설이 시작되었다. 1993년 근무하던 시절, 팔당호로 유입되는 소하천은 축산폐수와 생활하수 등으로 오염되어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경안천은 오염된 하천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지금은 하수처리시설이 설치되고 하수관거가 정비되면서, 낚시나 수영이 가능할 정도로 수질이 크게 개선되었다.
1990년 7월 19일, 팔당호 상류 지역 7개 시군 대부분이 「팔당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되었다. 1975년 팔당호 인근 4개 시군의 일부를 상수원보호구역 지정한 이래 또 다른 강화된 조치였다. 이는 팔당호와 대청호 수질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Ⅰ권역과 Ⅱ권역으로 구분하여 지정한 것이다. 동시에 충청북도의 대청호 유역도 함께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지정 이후에도 고시 적용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점차 자유롭게 바뀌었고, 수변 지역에는 음식점은 물론 ‘러브호텔’이라 불리는 숙박업소까지 급증했다. 팔당 상류의 난개발 문제가 이슈화되자 환경부와 감사원에서 수시로 점검과 감사가 진행되었고, 광주시와 양평군 등 팔당호 상류 지역의 많은 공무원들이 신분상 불이익을 받았다. 미비한 제도 속에서 개발과 보전 사이에 끼인 힘없는 공무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런 전환기에 팔당상수원을 관리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Ⅰ권역에서는 하수처리구역이 아닌 지역에 800㎡ 이상의 일반 건축물은 입지가 제한된다. 1990년대 중반, 예전에 함께 근무
했던 경기도 문화정책과장이 필자를 호출했다. 예술가처럼 보이는
중년의 연인이 함께 있었고, 과장은 “대학로 같은 ‘바탕골 공연장’을 설치하려고 하는데, 군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라며 도 차원에서 긍정적인 검토를 요구했다.
하지만 고시에 따르면, 지역 주민만이 이용하는 공공복리시설만이 입지가 가능하다. 공연장은 외지인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이므로 허가 대상이 아니었다. 그대로 설명하자 과장은 소극적이라며 강하게 질책했다.
몇 달 후, 양평군에 고시 준수 여부를 점검하러 갔다. 그때 문득 ‘바탕골’이 떠올라 툭 던져봤더니, 팀장이 사색이 되며 관련 서류를 가져왔다. 놀랍게도 담당자, 팀장, 부군수의 결재는 없고, 과장이 기안하고 군수 서명만 받아 허가가 나간 상태였다. 실무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허가를 강행한 것이다. 자료를 감사과에 넘겼고, 해당 과장은 중징계를 받는 등 행정조치가 이뤄졌다. 민병채 군수(2011년 사망)는 국정감사에 불려 나와 이해찬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질타를 받았다.
2006년 사무관 승진 후 양평군에 발령받았을 때, 당시 팀장이었던 분은 환경관리과장이 되어 있었다. 예전 일을 이야기하며 형님 아우 사이로 잘 지냈다. 민병채 전 군수도 공식 행사 등에서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눴고, 양평군 발전을 위해 수많은 고민 하셨던 분이었다. 껄끄럽게 시작된 관계가 깊은 인연으로 다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삶에서 인연의 끈은 돌고 돌아, 우리가 지낸 시간을 다시 꿰어주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