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군청 과장
2006년 10월 13일, 새벽이슬 맞으며 양평군청에 도착했다. 양평대교를 건너는 순간, 마음속에 감회가 밀려왔다. 8주간의 사무관 승인자 교육을 마치고 받은 첫 발령지. 당시 시군 과장직은 일정 비율이 도에서 내려가는 자리였고, 양평군에는 행정직·토목직·환경직 각 1명씩 경기도 자원으로 배치되었다.
도착하자마자 간부회의에 참석했고, 회의 종료 후 부군수에게 임용장을 받았다. 직위는 환경사업소장, 숙소는 옥천면 사업소 안에 마련되어 있었다. 직원들과 상견례를 마친 뒤, 생소한 양평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월요일 아침 간부회의에 늦지 않기 위해, 일요일 저녁이면 수원 집에서 출발했다. 비나 눈 같은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 시절, 일요일 밤 8시 55분은 KBS 2 TV의 개그콘서트 시간. ‘마빡이’, ‘고음 불가’, ‘대화가 필요해’ 등 인기 코너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때였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출발하면, 밤 12시 무렵 관사에 도착했다. 평일 아침에는 6시부터 7시까지 운동장에서 축구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50~60대였고, 1시간 내내 숨이 차도록 뛰었다. 조금이라도 덜 뛰면 어르신들의 호통이 이어졌고, 꾀를 낼 수가 없었다. 20년 이상 뛴 그들의 체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저녁 시간은 술자리로 채워졌다. 대부분 공식적인 자리였고, 술을 잘 못했지만 억지로 마셔야 했다. 덕분에 소주 한, 두 잔이던 주량은 많이 늘었다. 시골 면장을 해보고 싶어 군수에게 사석에서 슬쩍 부탁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군청 과장들이 면장직을 꺼리는 이유는 명확했다. “2년 나갔다 오면 부조금에 1~2천만 원 마이너스 통장은 기본, 술로 위가 펑크 난다.” 그래도 한 번은 근무하고 싶었다.
환경사업소 시절에는 옥천면, 환경위생과장 시절에는 서종면을 담당했다. 옥천면은 군수가 3대째 배출된 지역으로, 옥천 냉면으로 유명하다. 서종면은 서울과 가까워 풍광이 좋고, 전원주택이 많은 지역이다. 전직 고위 관료, 정치인, 예술가 등이 많이 거주하며, 면장 근무가 가장 까다로운 곳으로 꼽힌다. 그들의 목소리는 크고, 요구는 크다. 그래서 면장들이 힘들다고 한다. 체육행사 등에 가면 담당과장들은 찬조금을 내야 한다. 서종면은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운동화, 운동복 등 받는 게 많았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봤던 추억이 있다. 도시에도 보기 힘든 문화를 체험했다.
학교 졸업 시즌이 되면 군수는 바쁘다. 갈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큰 곳을 몇 개 골라서 가고 나머지는 과장들이 대신 참석한다. 겨울 용문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에 교장, 의원, 자치위원장 등 여러 인사의 축사가 이어졌다. 내가 보기에도 지루해 보였다. 내 차례가 왔다. “학생 여러분!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앞으로 행복한 여러분의 날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축사에 큰 박수가 터졌다. 연설은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직원들의 업무능력 향상을 위해 매주 Clean Water Day를 운영했다. 환경기초시설 운영 정보를 공유하고, 자격증 취득 시 상품권을 지급하는 등 동기부여를 강화했다. 직원들과 자주 대화하며, 편안한 직장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시기는 관리자로서 조직 문화를 조성하는 데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시간이었다.
정치에 있어서 지역 출신 과장들은 자유스럽지 못했지만, 필자는 경기도 출신으로 자유스러웠기에 상대적으로 3자 입장에서 지켜보며,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