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와의 만남

by 최영남

중국어와의 만남


팔당상수원관리사무소 근무와 중국어와의 만남

1994년 6월 7급으로 승진하며, 다시 팔당상수원관리사무소에 근무하게 됐다. 주로 현장에서 쓰레기 처리 등 오염원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이미 근무한 경험이 있어 공직 생활 중 비교적 여유가 있던 시기로,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중국어 공부였다.


1992년 8월 24일, 대한민국과 중국은 공식적으로 수교를 맺었다. 이는 냉전 종식 이후 변화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한국은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중국어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학습 욕구가 생겼다.

1995년, 중국어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교재나 학습 자료가 많지 않았습니다. 입문단계의 책을 공부했고,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발음을 익히려 하였지만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집중해서 학습한 결과, 경기도 공무원교육원의 중국어과장 선발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교육은 총 9주 과정(합주 4주, 비합숙 4주, 현지 여행 1주)으로 진행되었다. 집중적인 언어 훈련과 사회, 문화, 역사 등을 배우고 체험했다. 단순한 언어 학습을 넘어, 중국에 대한 이해와 국제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공직자의 배움과 여행 — 중국어와 함께한 성장의 시간

중국어 학습은 단순한 언어 공부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여는 경험이었다. 문법과 이론은 대학교 교수들이 맡았고, 회화는 중국인 조선족 강사들이 담당했다. 수교 이전 한국 대학의 중문과에서는 대만어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수들은 회화에는 다소 약한 면이 있었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공부에만 몰입했고,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인생 첫 해외여행

교육과정의 마지막 1주는 중국 현지 여행이었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 첫 해외여행이었다. 북경, 서안, 항주, 소주, 상하이를 돌아보며, 당시 생소했던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했다. 특히, 상하이의 임시정부 방문은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1989년 1월 1일, 대한민국은 해외여행 자율화를 전면 시행했다. 그전까지는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이 일반 국민에게는 제한되어 있었고, 여권 발급도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가능했다. 특히 공직자에게는 더욱 엄격한 제약이 있었기에, 이 여행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현지 언어를 체험하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듣고 보았다. 공직 생활을 배움과 즐거움이라는 또 하나의 흥미 거리로 채운 유익한 시간이었다.

2002년, 다시 중국 — 선양에서의 교류 연수

2002년 6월, 2년간 숨 막히던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었던 시기였다. 누구나 고생한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연수 신청을 했고, 반대하는 이 없이 자연스럽게 기회가 주어졌다.

4주간의 중국교류 연수는 랴오닝성 선양시 정치·경제학원에서 진행되었다. 중국의 사회, 문화, 역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체험하며 색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었고, 현지에서 직접 언어를 사용하며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연수 기간 선양시 곳곳을 돌아다녔고, 때마침 서울에서 개최된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 신화를 달성하는 감동을 중국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백두산, 연변, 단동시, 대련시 등 역사적 의미가 깊은 장소들을 방문하며, 배움과 여행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렸습니다. 한국인 거리인 선양시 서탑거리(西塔街) 한식당에서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목 터지게 응원하고, 스페인 8강전은 조선족 학교에 모여 유학생, 현지인 등과 응원했던 감동의 추억이 있다.


공직 속의 쉼표 — 중국어와 함께한 나의 여정

가을, 나는 공무원교육원으로 발령받았다. 그곳에서 중국교류 업무를 맡게 되었고, 매년 경기도 공무원을 선발해 인솔하여 랴오닝성으로 보내는 일을 담당했다. 동시에 한 달 동안 한국에 온 랴오닝성 공무원과 함께 생활하며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서울, 제주도, 설악산, 부산 등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 속에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소중한 추억을 쌓도록 했다. 그 시간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를 놓는 일이었고, 언어를 넘어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다.


중국어, 평범함을 넘어선 즐거움

중국어는 자칫 평범할 뻔했던 공직 생활에 커다란 즐거움과 활기를 안겨주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그 호기심은 배움과 즐거움을 끌어안으며,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다.

중국어는 공직 내내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창구였고, 자부심과 즐거움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책임과 과업이 얽힌 공직의 무게 속에서도, 나는 나만의 쉼표를 찾았다. 그 쉼표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위안이었다. 타인의 삶을 위해 일하는 공직자의 길에서,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은 오히려 더 큰 균형을 만들어 주었다.


중국어 공부와 관심은 내 안의 긴장을 천천히 녹여냈다. 날마다 반복되던 피로 속에서도, 그것은 따뜻한 숨결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공직 안에서 다시금 나 자신을 만나고, 더 나은 나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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