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게이먼. 《북유럽 신화》. 박선령 옮김.나무의철학.2017.
특정 민족이나 국가, 지역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이야기를 신화라 한다. 현대사회에서 신화를 대하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입장은 신화를 비합리적인 거짓말로 간주한다. 두 번째 입장은 신화를 고도의 상징이 응축된 이야기로 보고, 그 상징을 다양하게 해석한 후,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신화가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첫 번째 입장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지만 그것이 신화의 전부는 아니다. 오래된 것은 시간을 품고 있으며, 그로 인해 특별해진다. 심지어 신화의 시간은 집단적이다. 오랜 시간 집단에서 전승되어 온 이야기. 신화는 사전적 정의만으로도 아우라를 뿜는다. 과학으로 신화의 가치를 재단하는 일이 부당한 이유다.
닐 게이먼의 《북유럽 신화》는 여러 북유럽 신화를 갈무리해 엮은 책이다. 단순히 신화적 사건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신화 특유의 기묘한 여운까지 담았다. 마블 영화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한 토르와 그의 하인 티알피, 토르의 동생 로키가 거인 왕을 만나는 이야기를 통해 그 여운의 의미를 좇아보자.
토르와 로키, 티알피는 여행 중에 거인족의 땅에 도착했다. 거인족의 왕은 성대한 연회를 열어 토르 일행을 환영했다. 화기애애한 연회 도중 거인 왕이 토르 일행을 자극했다. 그는 토르 일행의 명성을 익히 들었다면서 자신들과 종목을 정해 대결을 하자고 제안했다. 자존심이 상한 토르 일행은 즉각 내기에 응했다.
로키는 음식 빨리 먹기 대결을, 티알피는 달리기 대결을, 토르는 빠르게 술 마시기, 고양이 들어 올리기, 씨름 대결을 펼쳤다. 그리고 로키와 티알피, 토르는 모두 패했다. 자신만만했던 토르 일행이 풀이 죽어 상심해 있자 거인 왕이 껄껄 웃으며 진실을 고백했다. 토르 일행의 대결 상대는 모두 환각이었다고.
로키가 빨리 먹기 시합을 한 대상은 불의 화신이었고, 티알피가 달리기 시합을 한 상대는 시간이었다. 토르가 술인 줄 알고 마신 음료는 사실 바닷물이었고, 그가 들어 올리고자 했던 고양이는 세상을 휘감고 있는 거대한 뱀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씨름을 했던 상대는 노년(세월)이었다.
대결 후, 거인 왕은 승리가 불가능한 대결에서 토르 일행이 보여준 엄청난 능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토르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다만 노년과 씨름을 하고 바다를 들이켠 전날 밤에 대해, 그리고 미드가르드의 뱀에 대해 생각했다.”
간단한 이야기다. 토르 일행의 능력은 탁월하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도 모든 것을 이기지는 못한다, 그 패배의 순간 토르는 말을 잃는다.
토르의 침묵을 따라 나 역시 한 동안 멍했다. 그러다 문득 ‘혹시 우리가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무언가가 사실은 토르 일행이 대결한 환각과 같은 것은 아닐까? 우리는 불가능한 대상에 매달려 끙끙대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극복·승리가 강조되는 요즘, 토르의 침묵은 우리 모두를 멈춰 세운다. 앞의 가치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도전·극복·승리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다. 도전·극복·승리가 강조되는 동안 그것이 무엇을 향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부재했다. 정작 목표는 질문되지 않은 채, 목표를 향한 과정의 기술만 범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무지 식을 줄 모르며 최근까지도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생산되는 남성 군인의 훈련 장면을 담은 콘텐츠를 보며 불편했던 이유다. 이 콘텐츠에서 우리가 마주한 고난의 내용은 질문되지 않은 채 남성성의 과시로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로 희화화된다. 문제는 그대로인데 엉뚱한 해결책만 예찬된다. 우리는 고난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있다. 토르 일행과 달리 압도적인 능력조차 없는 우리에게 육체의 극기로 고난을 넘으라는 요청은 어처구니없는 폭력이다. 이들 콘텐츠는 희망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아등바등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은 가장 슬픈 자화상이자 못된 은유다.
그러나 우리는 토르의 침묵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중대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토르의 침묵은 도전·극복·승리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질문함으로써 우리의 오류를 일깨운다. 로키가 아무리 빨리 음식을 먹어도 음식을 태워버리는 불의 화신을 이길 순 없다. 티알피가 아무리 빨라도 흘러가는 시간을 앞지를 순 없다. 토르가 아무리 술을 잘 마셔도 바닷물을 다 들이킬 순 없고, 아무리 힘이 세도 온 세상을 휘감은 뱀을 들 수는 없으며, 신인 그조차도 세월을 비껴갈 순 없다. 즉, 토르 일행의 대결 상대는 애초에 도전·극복·승리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와 보자. 우리의 노력은 온전히 성취해 낼 수 있는 대상을 향해 있을까? 혹시 우리는 이기지 못할 대상에게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물음은 잔혹한 낙관주의cruel optimism를 소환한다. 로렌 벌랜트Lauren Berlant가 고안한 이 개념은 불합리한 구조·제도에서는 행복한 미래가 도래할 거라 믿는 낙관주의가 잔혹한 방식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음을 폭로한다. 체제의 모순·착취로 인해 낙관주의는 끝내 실현될 수 없기에, 이 낙관주의는 잔혹하다. 실현될 리 없는 행복한 미래를 향한 믿음이 낙관으로 가득하다는 건 지극히 우울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우울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끊임없이 긍정하며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잔혹한 낙관주의가 지배하는 체제 안에는 기대를 투자할 다른 모델이 부재하기에, 사람들은 기존 모델(신자유주의적 모델, 정상가족 모델 등) 안에서의 행복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며 여기에 현재의 에너지를 투자한다. 생산적인 방식으로 쓰일 수도 있었던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이다.
이제는 압도적 힘을 가진 토르조차 침묵시키는 체제의 불합리성을 깨닫고 조금은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 여기에 서 있는 우리의 존재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고민이 시급하다. 남성 군인 훈련 콘텐츠만큼이나 군대 내의 구조적 폭력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극기, 끈기를 가지고 직진할 때가 아니라 잠시 멈추어 우리의 방향을 점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