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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Sep 27. 2021

군대라는 '정신병원(asylum)'에서 온 편지

〈You come in we come out〉(제람)


  군 입대를 위한 병역판정검사를 받을 때,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는지, 남성에게 성애적 감정을 느끼는지 등을 묻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솔직하게 답했을 때의 결과를 마주하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제람의 전시 〈You come in we come out: Letters from Asylum〉은 군대에서 자신을 솔직히 드러낸 사람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에 관한 증언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군대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쓴 기록을 보며 병역판정검사 질문에 거짓으로 답한 내가 ‘옳았다’는 죄스러운 수치심을 다시금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하며 아닌 척 마음 졸이며 행동하거나, 솔직하게 말한 후 ‘정신병자’가 되어 고통받거나. MTF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 이어, 군대 내 성소수자의 선택지는 여전히 이 두 가지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했다.


  〈You come in we come out〉의 작가 제람은 2008년 이등병일 때 한 부대 간부에게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털어놓았다. 선임들의 괴롭힘에 수척해진 그를 보고 간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타르며 물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제람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모든 부대원이 알게 되었고, 그는 군 정신병원에 116일간 수감되었다. 병원에서도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정부, 군을 상대로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고, 제람은 그제야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적합하지 않은 존재라는 부정적 명명을 획득하기 위해 온갖 수모와 아픔을 감내해야만 하는 아이러니는 성소수자에게 군대가 가하는 폭력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



내가 동성애자로 추측되는 상대와 만나 커피를 마신 기록을 보고 내가 ‘당연히’ 그와 성관계를 가졌을 거라 단정했다. 나는 커피만 마셨다고 했는데 동성애자가 그럴 리 없다며 억측을 굳혔다.


나는 관심병사가 되었다. 나에 대한 압박은 심해졌다. 이것이 나를 지치고 우울하게 했다. 증상은 심해져 군 정신과를 전전하다 결국 군대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히스테릭성 인격장애와 자아이질적동성애라는 병명을 얻어 현역복무부적합자로 분류되어 군 정신병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국가가 공인한 동성애자가 된 셈이다.


내가 거짓으로 성소수자인 척한다고 했다. 군 당국은 군 전역심사 자리에서 나에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눈동자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말을 어눌하게 연기하라고 시켰다. 나는 두 차례나 거부했다. 나는 부당하다고 항의했고 그런 나에게 병원 측은 아침과 저녁에 강제로 약을 먹였다.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다가 독방에 갇혔다. 두 팔과 다리가 침대에 묶였다.

안으로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이야기의 구조


  전시물이 배치된 방식이 인상 깊었다. 각각의 이야기가 적힌 투명판 중 일부는 전시물 안으로 들어가야만 글을 읽을 수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즉, 관람자가 전시물을 보려면, 안으로 '들어갔다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들어갔다 나옴’의 구조는 전시의 주제와 포개져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You come in we come out〉의 이야기들은 수동적 관람의 대상이기를 거부한다. 즉, 〈You come in we come out〉에서는 ‘거리두기’가 불가능하다. 반드시 들어가야만, 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개별 이야기는 동정, 연민, 비난의 객체가 아닌 정동의 주체가 된다. 관람객이 무엇을 느끼든, 들어갔다 나온 그는 바로 그 느낌으로 인해 이전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들어가면, 우리가 되어 나서게 된다(You come in we come out).' 전시에 담긴 이야기들은 저 멀리서 거리두며 관찰할 무언가가 아닌 지금 당장의 변화를 촉발하는 직접적인 요청이다.


  2018년, 제람의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될 때의 일화는 〈You come in we come out〉이 품은 가능성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작가가 한 영국 미술대학의 수업에서 이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을 때, 교수는 그의 작품이 이미 영국에서 다 지나간 이야기라며, 누가 신경 쓰겠느냐(Who cares?)고 물었다 한다. 제람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내가 신경 쓴다(I care)”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준 20여 명의 친구가 없었다면 제람의 프로젝트는 그날 중단되었을 것이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과장으로 잔뜩 부풀려진 것만 같은 이 일화가 보여주듯, 〈You come in we come out〉은 공감과 연대,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이 진심이라면, 〈You come in we come out〉에도 응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You come in we come out〉의 어떤 편지가 증언하듯, 이성애 성매매가 적발된 병사는 명백한 범법행위를 했음에도 타이르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성소수자는 존재 자체가 죄가 되어 심문당하는 군대를 그대로 둘 순 없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915154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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