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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Apr 18. 2022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괴물’

영화 〈몬스터〉(2003) 리뷰


  13살 때부터 동생들의 생계를 위해 ‘창녀’ 생활을 했지만, 정작 사실을 알게 된 동생들로부터 쫓겨난 에일린에게는 꿈이 있다. 우연한 계기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마를린 먼로처럼, 언젠가 자신에게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아봐주고 사랑해주는 남자가 나타나줄 것이라는 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남자는 없었다. 에일린에게 쾌락을 구매하는 남자들은 그녀가 꿈꾸던 남자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비 오는 날 밤, 에일린 자기의 꿈이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절망적으로 깨닫고 자살을 시도하기로 한다. 그리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맥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 한 클럽에 들어간다. 영화 〈몬스터〉는 이렇게 시작한다.


  에일린이 들어간 곳은 퀴어들이 모이는 클럽이었다. 그곳에서 셀비라는 이름의 여자가 그녀에게 다가온다. 에일린이 질색하며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흥분하자 셀비 역시 ‘그런 의도’로 말을 건 게 아니라고 답한다. 하지만 거짓말이다. 셀비는 에일린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 호감이 에일린의 모든 것을 바꾼다. 에일린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자신의 매력을 알아봐주고 다가와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녀의 매력은 늘 이성애 남성들의 돈과 치환 가능한 것으로만 여겨졌고, 빠른 시간 동안 소비된 후 버려졌기 때문이다. 셀비가 자신에게 수작을 건다며 잔뜩 흥분해 화를 내던 에일린의 마음이 바뀌는 이유다. 진심어린 사랑과 관심이 갈급했던 에일린에게 성적 지향의 문제는 사소한 문제가 되어버린다. 모두로부터 버려진 사람에게 관습적 섹슈얼리티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제 에일린에게는 셀비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만이 중요하다.



  행복. 참 골치 아픈 말이다. 무엇이 행복일까? 에일린에겐 돈으로 셀비를 호강시켜주는 게 ‘행복’이다. 에일린은 셀비의 관심과 호감, 즉 비물질적인 것으로부터 구원받았다. 하지만 그 구원을 지속하는 방법을 물질적인 것에서 찾는다. 최초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평생 ‘창녀’로만 일했던 에일린이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쉬울 리가 없기에 돈을 매개한 ‘행복’을 위한 에일린의 계획은 시작부터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에일린을 믿고 가족을 떠난 셀비의 불안‧불만도 점차 고조된다. 결국 에일린은 급한 대로 다시 ‘손님’을 구하러 거리로 나선다.


  안타깝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많은 사람이 행복을 돈에서 찾고, 돈을 벌기 위해서 별의별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에일린이 ‘더 좋은’ 행복을 찾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것이 곧 파멸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진짜 비극은 세상이 에일린을 대해온 방식의 연장에서 생긴다. ‘손님’ 중 한 명이 폭력적으로 굴자 생명에 위협을 느낀 에일린이 그를 총으로 쏜 것이다. 이 살인에는 정당성이 있었다.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죽었을 테니까. 그러나 셀비와 돈을 매개로 ‘행복’하고 싶다는 에일린의 뒤틀린 욕망은 그녀로 하여금 또 다른 살인을 하게 만든다. 일반적인 직장을 갖기 어려운 그녀가 ‘손님’을 살해한 후 차와 돈을 처분하여 버는 돈의 유혹에 굴복한 것이다.



  셀비가 이 사실, 즉 에일린이 살인으로 돈을 벌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경찰의 수사망이 점차 좁혀오자 행복을 향한 에일린의 여정은 위기를 맞는다. “난 선택 같은 건 해본 적도 없어요.” 궁지에 몰린 에일린의 말이다. 누군가는 이 말이 틀렸다고 비난할 수 있다. 모든 가난한 사람이 몸을 팔거나 살인을 하지는 않으니까. 최초에는 에일린의 ‘선택’이 있었을 것이란 소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한 번의 선택이 만들어낸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을 전부 그녀 탓이라 하는 건 가혹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에겐 첫 선택을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삶은 늘 그녀를 극한으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나락으로 떨어져본 사람은 안다. 그동안 자신을 지탱해온 도덕과 윤리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생존을 위해서는 ‘일반적’ 기준으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당연한 선택지’가 되기 마련이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사연의 주인공인 에일린은 12년간 사형수로 복역한 뒤 2002년에 사형당했다. 〈몬스터〉는 ‘괴물’이 탄생하는 과정, 사랑으로 인한 ‘괴물’의 갱생 가능성, 행복에 관한 편협한 전망이 잉태한 비극, ‘선택’을 박탈당한 이들이 마주한 잔혹한 현실의 문제를 훌륭하게 엮어낸 영화다. 에일린으로 분한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도 압권이다. 그녀가 죽기 전에는 진정한 구원과 위안을 얻었기를, 살인사건의 피해자에게 진정 어린 용서를 빌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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