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사랑, 두 번의 실패, 한 번의 구원

소설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리뷰

by rewr
1.jpg 조라 닐 허스턴,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이미선 옮김, 문예출판사, 2014.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는 미국 흑인 여성 문학의 선구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조라 닐 허스턴의 대표작이다. 그녀의 생애에는 극적인 요소가 있다. 작가 사후 완전히 잊혔던 그녀의 작품은 1970년대 민권운동의 시기에 흑인 여성 작가 앨리스 워커에 의해 재평가되어 다시 읽히기 시작했고, 끝내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허스턴은 당대의 (남성) 흑인 작가로부터 정치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자기 삶과 작품의 역사를 통해 모든 문학은 정치적임을 역설한 셈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세 번의 결혼 끝에 진실한 사랑을 찾은 흑인 여성 재니다. 첫 번째는 할머니가 짝지어준 로건 킬릭스와의 결혼이었다. 재니의 할머니에게 결혼이 갖는 최고의 미덕은 ‘보호막’이다. 그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내가 아는 한 백인 남자가 세상의 지배자야. (…) 백인 남자는 자기 짐을 내려놓고는 흑인 남자더러 그걸 들라고 하지. (…) 흑인 남자는 (…) 그냥 자기 여자 식구들한테 짐을 넘긴단다. (…) 너한테 주고 싶은 것은 로건 킬릭스가 아니라, 아가, 보호막이란다.


즉 할머니는 어차피 흑인 여성이 백인으로부터 넘겨받은 흑인 남성의 짐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조금이라도 부유한 흑인이 낫다는 입장이다. 사랑을 중시하는 어린 재니는 고민 끝에 할머니의 제안을 수락해 로건과 결혼한다. 함께 지내다보면 사랑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재니의 할머니와 비슷한 사랑관을 가진 로건은 재니가 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점점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 자신의 풍족한 재산에 재니가 상냥함, 온화함, 젊음, 아름다움 등으로 보답하지 않을 거라면, 일이라도 하라는 식이다.


그때 재니 앞에 조 스탁스가 나타난다. 조는 달콤한 말로 재니를 유혹하며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재니는 조에게서도 사랑을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를 따라 길을 떠난다. ‘먼 지평선’과 같은 조에게서 ‘변화와 기회’를 읽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변하면 사랑이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또 한 번의 착각에 빠진 것이다.


조는 황량한 시골 마을을 삽시간에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만들 정도로 수완이 좋은 사업가‧행정가‧정치가였다. 마을에서 조의 지위는 날로 상승하고 그에 따라 재니는 이전보다 훨씬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재니는 여전히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상태다. 로건과 마찬가지로 조 역시 그런 재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녀에게는 부루퉁해 있을 권리가 없었다.” 그가 재니를 “높은 자리에 앉아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자기들이 생각하고 있다고 착각할 뿐”이라는 점에서, 조에게 재니는 자신만을 위한 장식품에 불과한 듯 보인다. 조는 재니에게 “말이 너무 많아”라고 말하며, 늘 두건을 쓰고 다니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재니를 자신을 위한 아름다운 장식품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재니는 이런 갑갑한 상황에서 20년간이나 결혼 생활을 지속한다.


소설에는 재니가 단 한마디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대목이 있다. “흥! 나더러 늙어 보인다고요! 바지를 내려놓고 보면 당신이야말로 세월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조가 공개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재니를 망신주려 하자 재니가 이에 응수하며 한 말이다. 이 말 이후, “그의 허영심은 홍수처럼 피를 흘렸다.” 조는 충격을 받아 안 좋았던 몸 상태가 더 악화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이내 죽어버리고 만다. 재니는 수없는 모욕을 견디면서도 수십 년을 살아왔는데, 조는 단 한 번의 모욕에 모든 것을 잃은 듯 상심하여 소멸해버린다. 이 우습고도 통쾌한 장면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 어떤 감정과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조가 죽은 후, 재니는 오랫동안 두건 안에 감춰왔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다. 소설은 “그 무게와 길이, 영광이 거기에 있었다”는 묘사로 그 순간의 감동을 전한다. 머리를 길게 풀고 다님으로써 모든 속박을 벗어던진 재니가 자아내는 감동 말이다. 주체성을 되찾은 재니의 마지막 남자는 티 케이크다. 티 케이크는 로건‧조와 달리 가진 게 없는 젊고 가난한 흑인이다. 하지만 앞의 두 남자가 갖지 못한 걸 재니에게 준다. 그것은 바로 재니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티 케이크 덕에 재니는 평생 맛보지 못한 행복을 누린다. 홍수에 휩쓸릴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목숨을 걸고 재니를 구한 후, 대신 숨을 거둘 정도로 재니를 향한 그의 사랑은 진심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결함은 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그 역시 로건, 조처럼 형편없는 남자로 보이는 순간이 더러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재니가 행복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는 재니가 오랜 세월 그토록 갈구해왔던 사랑을 준 첫 남자였다. 누군가는 왜 재니가 결혼과 사랑에서만 행복을 찾느냐고 이 작품을 비판할지도 모른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작품이 쓰인 시대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제 막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가난에 허덕이던 흑인 여성에게 사랑과 결혼을 통한 ‘구원’ 말고 그 어떤 대안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즉, 시대를 고려하지 않은 납작한 비판보다, 역사적 관점을 동반해 이 소설을 독해함으로써 무엇이 여성의 행복과 연계되어왔는지의 계보를 그려보는 게 더 유익할 거란 소리다. 그럼으로써 동시대의 또 다른 재니가 ‘더 나은’ 행복의 내용을 구체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을 향한 재니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재니는 조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당신도 죽기 전에 한 번은 내 말을 들어요. 평생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짓밟고 짓이기고 했으면서 그런 말을 듣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거죠? (…) 당신은 당신 자신 말고는 어느 누구의 마음도 달래주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어요. 당신 자신의 큰 목소리를 듣느라 너무 바빠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