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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Sep 26. 2022

[DMZ DOCS] 스스로 화산에 걸어간 부부 이야기

〈불 속의 연인: 카티아와 모리스 크래프트를 위한 진혼곡〉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불 속의 연인: 카티아와 모리스 크래프트를 위한 진혼곡

(The Fire Within: A Requiem for Katia and Maurice Krafft)

France, UK, Switzerland, US/2022/86min/베르너 헤어조크 감독 작품


  프랑스 출신의 화산학자 부부 카티아 크래프트와 모리스 크래프트. 그들은 1991년 화산 폭발을 연구하러 방문한 일본에서 사망했다. 대피하라는 당국의 지침을 따르지 않고 폭발을 앞둔 산에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망하기 전까지 부부는 세계 곳곳의 폭발 중인 화산을 찾아 200시간 분량의 영상을 남겼는데, 〈불 속의 연인〉은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부부에게 바치는 헌사를 담아 이를 편집한 영화다.     


  폭발 중인 화산재는 내부 온도가 500도 이상이고 시속 600킬로미터로 이동한다. 극도로 위험하다. 하지만 부부는 화산 폭발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혹을 느낀다. “화산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카티아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화산은 부부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화산에 대한 부부의 매혹은 곧 죽음에 대한 매혹이다. 웅장하고 경건한 음악과 함께 나오는 화산 폭발 장면은 극장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부부가 촬영한 영상을 감상하는 관객에게 숭고함을 선사한다. 말을 잃게 하는 압도적 경관 앞에서 한없이 위축되고 겸손해지는 성찰적 감정인 숭고 말이다.     


  화산 폭발의 장엄한 이미지는 우리가 현실에서 애착을 느끼는 모든 것의 의미를 지극히 하찮게 만든다.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를 대면하는 순간에야, 우리는 삶의 본질적 소탈함을 자각하고 모든 번잡스러운 욕망에서 초탈한다. 부부가 화산에 느끼는 순수한 매혹은 아마 여기서 생겨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죽음에의 매혹은 생명에 대한 애착으로 재탄생한다. 부부는 화산 폭발을 그저 숭고한 스펙터클로만 다루지 않는다. 붉고 검은 용암과 하늘 높이 솟은 화산재를 향하던 부부의 카메라는 이내 재난의 현장으로 방향을 튼다. 수많은 사람과 동물의 삶 터전이 화산 앞에서 모두 회색빛으로 변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과 자연에 존재하던 것은 잿빛 죽음 아래서 비로소 평등해진다. 화산재에 뒤덮여 헐떡이는 소와 천천히 감기는 새의 눈 그리고 또다시 이어가야만 하는 살아남은 자의 삶. 아이들은 화산재를 모아 빨대를 꽂고 바람을 불며 논다. 마치 그 화산재가 자기 삶의 터전을 초토화시켰다는 사실을 잊은 듯이 말이다. 부부의 관심이 학술 연구에서 인도주의적 관점으로 확장된 것은 필연이었다.     



  요컨대 부부는 화산 폭발에서 죽음과 삶을 동시에 봤다. 적어도 화산 폭발의 현장에서는 죽음과 삶이 대립하지 않는다. 모두를 일깨우는 둘 만의 현장. 〈불 속의 연인〉은 이 놀라운 확장의 계기를 선사한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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