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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Oct 11. 2022

내게도 오빠가 있‘었’다

영화 〈성덕〉 리뷰

8★/10★


  내게도 ‘오빠’가 있었다. 다섯 명의 멤버 중 네 명이 크고 ‘작은’ 범죄와 구설수에 휘말린 그룹. 팬들이 자조적 유머로 마지막으로 남은 멤버의 활동명 중 일부인 ‘최강’을 ‘최종’으로 바꾸어 부르는 그룹. 수많은 CD와 굿즈를 사고 방 안을 온통 그들 포스터로 도배했던 그룹. 자발적‧적극적으로 홍보했고 지인들이 인터넷의 조롱 짤을 들이댈 때마다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그룹. 힘든 시기를 보낸 후 다시 웃는 얼굴로 방송하고 호응받는 모습을 보며 내 일처럼 기뻤던 그룹. 그러나 결국 덕질을 ‘과거형’으로 말할 수밖에 없게 된 그룹.


  영화 〈성덕〉은 성범죄로 수감 중인 가수 정준영을 덕질한 오세연 감독이 자기 경험에 범죄자가 된 연예인을 좋아한 또 다른 팬들의 이야기를 더해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사랑, 회한, 분노, 머뭇거림, 죄책감, 아련함 등이 복잡하게 얽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공감하고 또 공감했다. 그것도 정말 격하게!



  “잘 가라 나쁜 새끼야”라는 말, 법에서는 ‘무혐의’여도 내게는 유죄라는 말, 울고 웃는 굿즈 장례식, 여전히 남은 미련에 대한 죄책감, 내 과거를 더럽힌 데에 대한 분노, 전자발찌 차고 반바지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는 일갈, 다 똑같은 놈 같아서 더는 덕질을 못 하겠다는 한탄, ‘그들은 우리를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는 물음, 그에게 조금이라도 남은 미련이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 우려, 영원한 우상은 오점을 남기지 않고 죽은 사람일 뿐이라는 자조 등등. 찬란했던 덕질의 수많은 순간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깊이 있는 해석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토록 다정하고 자상하며 유머러스하면서도 젠틀했던 남자들, 내가 누구보다 열렬히 사랑했던 남자들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충격. 이 충격 앞에서 여러 덕후들은 그들을 아꼈던 자신의 마음과 성숙한 시민 의식을 조율하며 힘겹게 앞으로 나아간다. 결과는 성장이다.



  한 팬의 말마따나 아이돌은 이상적 세계의 상징이다. 아이돌은 현실의 온갖 어려움에 의연할 수 있게 해준다. 선생님, 부모님, 친구한테 상처를 받았더라도 ‘나는 너를 응원한다’는 그들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달랜다. 그와의 친밀한 관계를 상상하며 가부장적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친밀성 모델을 학습하고, 이를 또다시 현실에 적용하여 내 옆에 있는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도 더 능숙하게 친밀성 협상을 해나간다.


  요컨대 덕후들의 아이돌 사랑은 일상과 친밀성 영역에서 그들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견인한다. 아이돌과 덕후의 애착 관계는 ‘광적인 감정’의 일방적 표출이 아니다. 덕질을 그저 철부지들의 돈 낭비, 시간 낭비로만 여기는 사람들은 친밀한 관계가 일상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관해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성덕〉은 배반당한 열렬한 사랑의 아픔으로 한층 성숙해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더불어 미투, 페미니즘의 대중화 이후 젊은 덕후들이 연예인과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덕후, 연예인뿐 아니라 이들의 감정 역학이 궁금한 사람들 모두가 〈성덕〉을 봐야 한다. 덕후들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적 갈무리를, 연예인은 자신을 향한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를, 머글은 덕후와 연예인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찐텐을 맛볼 수 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동방신기' 다섯 멤버들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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