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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Dec 06. 2022

종교영화의 장단을 모두 가진, 〈탄생〉

6★/10★


  비종교인이지만, 종교영화를 즐겨 본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을 현실로 만들어내고야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아내는 감동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능성의 씨앗을 자기 몸과 마음을 희생하며 끝끝내 뿌리고 키워내는 사람들은 ‘객관성’, ‘합리성’, ‘현실성’ 운운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기존 사회의 보수적 수호자들이 틀렸음을 입증하기도 한다.


  〈탄생〉은 최초의 조선인 신부 김대건의 일대기와 초기 천주교 수용기의 역사를 담은 영화다. 그러나 화려한 캐스팅, 홍보 문구(‘조선 근대의 길을 열어젖힌’)등에서 표방한 것과 달리 영화적 재미보다는 꼼꼼한 고증과 사실 전달에 더 초점을 맞춘 듯하다. 물론 김대건이 작은 배에 의지해 바다를 건너는 장면의 스펙터클 등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더불어 김대건을 비롯한 몇몇 주요 인물의 서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왜 조선의 민중들이 천주교를 선택했는지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있다. 김대건의 영웅적 모험담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그의 모험담만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천주교가 담아낸 조선 민중의 열망이 무엇이었는지, 천주교와 근대 세계·제국주의가 어떻게 맞물렸는지가 궁금한 관객이라면 기대한 바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다.


  위 두 특징을 〈탄생〉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많은 종교영화, 전기영화가 역사적 사실 전달과 성인聖人 중심의 이야기 전개라는 특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즉 〈탄생〉은 관람하는 목적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만한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탄생〉이 기존 종교영화, 전기영화의 문법을 확장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장르영화로서의 종교영화, 전기영화를 아끼는 관객 혹은 독실한 신자라면 감동적으로 볼 영화인 것도 분명하다.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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