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wr May 04. 2023

탈북 청년과 한국 청년, 우리들의 같고 다름에 관하여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믿을 수 있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A Tour Guide

Korea/2023/95min/한국경쟁


  통계*에 따르면 2022년까지 남한에 들어온 탈북민의 숫자는 3만 4천여 명 정도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주인공 박한영은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곽은미 감독이 창조한 인물로, 3만 4천이라는 추상적 숫자에 감춰진 구체적 얼굴을 상상해보게끔 하는 인물이다. 한영은 이제 막 한국에 들어와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가이드로 경력을 쌓는 중이다. 탈북 후 중국에 있을 때 강제 북송의 위협에 시달렸기에 얼른 돈을 벌어 안정적인 생활을 일구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함께 탈북한 동생 인혁과 북에 있는 엄마와 다시 재회해 새 출발하기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과 “생긴 건 똑같지만 외국인보다도 못하게 대우받는” 탈북민인 한영이 한국사회에서 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다. 직장 동료들의 텃세를 견디며 돈을 벌기에도 바쁜데, 동생 인혁은 감감무소식이고 한영의 핸드폰에 ‘감시자’로 저장된 보호 담당 경찰관 태구의 연락도 귀찮기만 하다. 그나마 먼저 한국에 넘어와 자리를 잡은 선배 탈북민만이 한영의 비빌 곳이 되어준다.     



  가이드의 수입과 연계된 쇼핑에서 읍소하듯 화장품을 반 강제로 팔고, 경복궁이 중국의 자금성을 모방해 만들었다는 둥의 거짓말로 중국인 관광객의 호감을 얻으며 어찌어찌 가이드 일에 적응한 한영. 그러나 한영이 한국사회에 온전히 정착할 수 있는지는 그녀의 의지에만 달려 있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2016년 한국이 사드(THAAD) 배치를 결정하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고, 이후 외교적 대치가 이어졌다. 관광 산업은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 중 하나였다. 일명 ‘사드 보복’이 이어지자 한영은 일자리를 잃고 어렵게 일군 성과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다. 더불어 점차 새 출발을 다짐했을 때의 산뜻한 마음을 잃어간다. 새 출발의 꿈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한영에게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탈북민 동료들은 각자의 생존과 미래를 치열하게 모색하느라 바쁘고, 한국인 동료는 한영의 성장을 경계한다. 처음엔 성가셨으나 꾸준한 진심으로 한영의 마음을 연 태구와의 관계는 사적인 친밀성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토록 어렵게 탈북했는데도 한영이 다시 공항으로 향하는 건 이 때문이다. 다시 한번, 그녀는 한국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소수자는 책임지고 짊어져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한영이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탈북민 전체를 투영하여 비난한다. ‘탈북민이라 못 미덥다’, ‘탈북민이라서 그렇다’ 등등. 탈북민 정체성은 내내 한영의 삶을 그녀 자신이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점유한다. 그리고 이는 곧 한영의 삶에 ‘사소한’ 잘못이 누적되어 꼬여가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소수자를 향한 편견 속에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일탈’이 주류 사회에서는 ‘범죄/잘못’으로 인식되고, 이를 통해 또다시 소수자를 뭉뚱그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영이 겪는 고난을 전시하듯 늘어놓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는 한영의 객관적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탈북민이든 아니든 한국에 사는 많은 청년이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 하반기에 개봉 예정이라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볼 관객들이, 이 보편적 퍽퍽함에 더해지는 ‘소수자라서 경험하는 어려움과 외로움’을 가만히 응시해보길 희망한다. 영화의 마지막, 조금은 원망하는 듯한 감정이 담긴 한영의 눈빛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우리의 구체적인 같고 다름에 관한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http://www.s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392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 초청으로 제24회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참석해 작성한 글입니다.     

★이 영화는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4월 28일 13시, 5월 3일 13시 30분, 5월 5일 19시에 상영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