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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Nov 11. 2022

이성애 규범이 두 소년에게 남긴 상처

〈클로즈〉 리뷰

8★/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루카스 돈트 감독이 연출한 영화 〈클로즈〉는 제75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자 2023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 벨기에 대표 출품작이다. 2022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하다.사랑과 우정의 경계에 있는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이성애라는 규범이 폭력적으로 작동하는 방식과 그 폭력의 여파를 홀로 견뎌야 하는 자들의 슬픔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그려낸다.


  시골 마을에 사는 두 소년 레미와 레오는 어릴 때부터 서로를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며 자랐다. 그러나 ‘친구’라는 호명은 둘의 관계를 온전히 대변하지 못한다. 한 침대에서 서로의 숨결을 가까이 느끼며 자는 게 익숙하고, 자연스레 둘이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는 둘은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두 소년이 그렇듯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친구일 수 있지만, 연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른들의 시선 밖에서 자기 둘만이 구축한 관계를 만끽하는 두 소년은 기존의 언어로는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관계의 우주를 자유로이 탐색하는 중이다.



  둘이 함께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변화가 생긴다. 학교는 공적 제도다. 아이들이 건실한 성인, 즉 ‘건전하고 착실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기관 말이다. 즉 학교는 공적 권위를 바탕으로 아이들의 몸에 정상성이라는 규범을 새긴다. 제도로서의 학교는 레미와 레오의 관계처럼 ‘애매모호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단지 선생님이 ‘동성애는 안 돼!’라고 겁박하는 차원이 아니다. 학교라는 기관에 관여하는 모든 주체가 기존 규범을 전파하고 재확립한다. 친구들은 늘 꼭 붙어 있는 레미와 레오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살갗을 맞댄 채 앉은 레미와 레오의 물리적‧정서적 가까움은 호기심/의심의 대상이다. 누군가는 그저 “너희들은 너무 딱 붙어 앉아”라고 웃으며 말할 뿐이지만, 누군가는 레미와 레오를 “호모”라고 부른다.


  레미는 남들의 시선을 괘념치 않는다. 레오와 오랫동안 구축해온 세계에 무한한 안정감과 절대적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오는 그렇지 않다. 레오는 둘의 관계를 ‘오해’하는 친구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레오는 둘만 있을 때도 친구들의 시비를 떠올린다. 규범은 이토록 위력적이다. 규범은 주체를 잠식해 자아를 검열하는 거울로 작동한다. 둘만의 역사가 새겨진 둘만의 장소에서도 레오는 레미를 멀리 한다. 같은 침대를 쓰기를 거부하고, 둘이 늘 함께 하던 전쟁놀이 중에도 “진짜로는 아무도 없다”며 김을 뺀다. “진짜로는 아무도 없다”는 레오의 말은 이성애만을 정답으로 간주하는 규범의 권위 앞에서 레오가 둘의 관계를 수치스러워하기 시작했음을, 둘이 구축한 세계가 허깨비처럼 사라져버릴 가능성을 레오가 인식했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레미는 레오를 기다려주고 더 기회를 준다. 하지만 레오는 점점 레미에게서 멀어지기만 한다. 아이스하키 동아리에 들어가 남자들의 놀이문화를 익히고, “생리하냐”라는 여성 비하적 농담을 습득한다. 결국 레미는 더는 레오와 이전처럼 지낼 수 없음을, 레오가 둘의 관계를 배반했음을 깨닫고 눈물 흘리며 레오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선생님이 말리는데도 레오에게 달려들기를 멈추지 않는 레미는 고작 친구들 말 몇 마디에 둘의 모든 것을 저버린 레오를 향한 분노, 자신들의 세계가 이토록 쉽게 무너졌다는 것에 대한 허탈함, 거대한 규범 앞에서 무력감 등을 느꼈을 것이다. 근래 본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전반부다. 후반부에서는 레오만이 주인공이다. 레미가 자살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친구들, 가족들이 모두 레미의 죽음을 슬퍼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를 진행한다. 하지만 레오는 내내 경직된 표정이다. 침대에 오줌을 싸고 화가 많아지는 등 레오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레오는 레미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슬픔이 버겁기도 하다. 레미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레오는 레미의 어머니에게 찾아가 “저 때문이에요. 제 잘못이에요”라고 눈물로 고백한다. 그러나 레오는 틀렸다. 레미는 레오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정상적 규범에 부합하지 못하는 자, 즉 동성에게 우정 이상의 친밀성을 느낀 레오가 수치심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규범은 이런 식으로 자기 바깥의 존재를 점령하고 포섭한다. 강압적 통치뿐 아니라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는 것이다.


  레오에게 ‘네 탓이 아니다’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아이스하키 시합에서 팔이 부러진 레오가 깁스 처치를 받는 장면이 있다. 레오가 눈물을 흘리자 의사가 팔이 부러지면 아픈 게 당연하다고 레오를 달랜다. 그러나 레오는 팔이 아파서 우는 게 아니다. 레미를 잃은 슬픔 때문에, 마찬가지로 폭력의 희생자인 그가 잘못된 자책으로 괴로워하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레오의 오인된 자책과 그런 레오를 향한 엉뚱한 위로. 이는 레미를 그리워할 레오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짐이다. 〈클로즈〉는 정상성과 규범 바깥의 존재가 마주하는 폭력의 여러 양상을 가슴 아프도록 생생하게 고발한다. 자신을 멋대로 재단한 사람들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영화에 담아내고자 했다는 루카스 돈트 감독처럼, 레오가 언젠가 다른 답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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