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wr Apr 22. 2024

담배와 위스키가 집보다 중요한, 신인류의 탄생

영화 〈소공녀〉

8★/10★


  언론에서 ‘요즘 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비판하는 몇 가지 특징 중 늘 손꼽히는 게 있다. 수입에 비해 과한 소비. 가사노동자로 일하고 월세방에 살며 돈이 아까워 보일러를 안 틀면서도 담배와 위스키는 포기할 수 없는 미소가 그렇다. 2015년, 담뱃값이 오르자 방을 빼고 대학 때 밴드를 함께 한 친구들 집을 돌며 잠을 청하는 미소. 미소에게는 미래 계획이 ‘없다’. 물론 미소에게는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 한솔이라는 미래 계획이 있지만, 그 누구도(심지어 남자 친구도) 이것이 꿈꿀 만한 미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보일러를 틀 필요가 없는 봄에 섹스하자는 연인의 ‘농담’, 헌혈하면 나오는 영화표로 데이트하기, 한때 모든 것을 공유했으나 이제는 각자의 삶에서 생존하느라 너무나 멀어져버린 친구들…. 〈소공녀〉에는 여러 청년 영화가 선보인 동시대 청년의 팍팍한 삶이 녹아 있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 물음은 팍팍한 청년의 삶이라기보다는, 그 삶을 살아내는 미소의 태도다. 장기적이고 거창한 계획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소박한 현재를 이어나가겠다는 미소의 태도 말이다.     



  청년 기본소득, 실업급여 등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항상 그 돈의 사용처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의 세금이 청년들의 술값, 모텔비로 나간다며 혀를 차는 기사들 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건전한’ 목적에 그 돈이 쓰이길 바란다. 국가와 권력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선심성으로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인식이 발현된 결과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시선이 문제적이라는 인식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복지는 수혜가 아닌 권리며, 각자가 필요한 데 돈을 쓰고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뿐이다. 자기 소득을 집(그리고 집으로 대변되는 ‘미래’) 대신 담배와 위스키 소비에 쓰는 미소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무턱대고 ‘취향 소비’를 긍정하자는 건 아니다. SNS의 경쟁적 과시 문화 아래서 오롯한 ‘자기 취향’을 가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은 대개 상품 경제의 욕망에 굴복된 채일 때가 많다. 미소의 미래 계획 '없음'도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청년 세대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논쟁적 신인류 미소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물론 보수적‧도덕적 단죄의 입장은 배제하고서 말이다. 우리 자아의 일부로 자리 잡은 ‘취향’의 의미에 대한 집요한 탐구의 결과에 따라 이 영화가 풍자인지, ‘신인류’에 관한 적확한 보고서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소공녀〉는 우리 시대의 사회 현상과 적극적으로 엮어내 꾸준히 감상되고 논의되어야 할 영화다.

매거진의 이전글 혁명가의 카메라가 향한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