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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Sep 02. 2024

알리체 로르와커의 원점

영화 〈더 원더스〉

7★/10★


  이탈리아 시골 마을 농부들이 카메라 앞에 선다. 우승하면 짭짤한 상금을 받을 수 있는 TV 경연 프로그램으로, 젤소미나의 가족도 여기에 참여한다.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복장은 농부들이 어떤 상태인지를 대변한다. 농부와 그 가족이 일상복으로도 노동복으로도 절대 입지 않을, 농촌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와 시골 마을의 ‘신비’를 제멋대로 덧씌운 이 복장은 자본주의에 밀려 점차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는 농부들이 생존하는 길은 도시인들이 원하는 우스꽝스러운 광대 짓을 수행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젤소미나와 그 친구 마틴이 서로를 웃게 한 일상의 ‘묘기’를 선보이자 당황한 사회자는 성급히 화제를 돌리며 다른 팀에게로 향한다. 농부와 그 가족은 ‘자연스럽게’ 존재해서는 매끄럽게 재현될 수 없다.


  농장 근처에서 수시로 들려오는 사냥꾼들의 총소리, 차라리 마을이 관광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웃, 농부의 생활을 지키고 싶은 권위적이고 우악스러운 아버지, 그런 남편이 불만이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어머니, 철부지 동생들……. 네 딸 중 장녀로 태어나 홀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는 젤소미나는 이 모든 게 답답하다. 무언가 돌파구를 마련해보고 싶지만 쉽지 않다. 아버지 몰래 신청한 TV 경연 프로그램은 젤소미나의 도전이었다. 비록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결국 탈주의 꿈은 좌절되었다. 철부지 같은 면이 있는 아빠가 큰돈을 들여 사 온 낙타처럼 놀이기구에 묶여 있어야만 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텅 빈 집은 젤소미나 가족이 그 언젠가는 집을 떠났다는 사실을 쓸쓸히 암시한다. 그럼에도 영화의 정서가 내내 처량하지만은 않은 것은 젤소미나와 그 가족이 집, 시골, 농장에서 벼려낸 무언가가 그녀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되었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를테면 말하지 않는 소년 일꾼 마틴이 실종되자 홀로 끝까지 그를 찾아 나서는 젤소미나의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젤소미나는 함께한 사람과 공간을 귀하게 여길 줄 안다.


  이 영화는 〈행복한 라짜로〉, 〈키메라〉를 연출한 알리체 로르와커의 2014년 작이다. 이후 작품에서보다는 이야기 구조와 주제 의식이 소탈하고 단순하다. 어쩌면 이탈리아 시골 마을을 토대로 반자본주의, 사랑, 폭력, 죽음의 문제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빚어내는 알리체 로르와커 이야기의 출발점이 이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철저하게 이용만 당하는 절대적 순박함으로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문화를 고발하고(〈행복한 라짜로〉), 죽은 자를 잊지 않고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를 뒤집어 접목하는(〈키메라〉) 그녀 이야기의 출발에는 젤소미나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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