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례 감독이 연출한 〈엄마…〉(2004)의 원 제목은 ‘엄마, 그냥 엄마로만 남아 있으면 안 돼?’였다고 한다. 6남매를 키우고 할머니가 된 엄마가 다른 할아버지와 연애를 시작하자 복잡한 심경을 느꼈고, 이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엄마의 연애를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어서 지은 제목이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의 묘미는 기획의도와 다른 순간이 수시로 펼쳐지고, 그로부터 새로운 통찰이 나온다는 점이다. 어느새 감독은 아빠의 폭력 속에서 자식들을 키우다 늙어버린 엄마라는 존재에게 초점을 맞춘다. 엄마와 모성에 관한 고민은 세대를 건너 자신과 언니의 삶으로도 확장된다. 러시아에서 석사까지 마쳤으나 아이를 낳으며 경력을 포기해야 했던 셋째 언니의 삶에서 감독은 엄마, 언니, 자신의 삶이 포개지는 것을 본다. 셋째 언니는 한 러시아 속담을 소개한다. ‘네가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인생은 계속되는 것이다.’ 같은 경험을 한 무수한 존재를 상상케 하는 말이다. 이처럼 〈엄마…〉는 ‘엄마’라는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사회적 역할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담아낸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지만 서로를 닮고 싶지는 않은 모녀 관계의 복잡한 역학도 깊이 있게 드러낸다.
같은 감독의 〈아이들〉(2010)은 세 아이를 낳고 키운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영화에는 내내 여성의 커리어와 양육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이 충돌이 어떻게 여성을 좌절케 하는지가 나온다. 아이를 보면 행복하지만, 양육과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는 상황에는 답답함을 느끼는 감독의 심정이 잘 전해진다. 영화 후반부, 엄마만이 찍을 수 있는 영역이 생겼음을 인지하고, 아이와 엄마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고자 하는 감독의 내레이션은 육아와 일을 모두 감당해야만 하는 여성 삶의 조건에 관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원래 류미례 감독은 대학 시절 혁명가를 꿈꾸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행사에서 다큐멘터리를 보고 ‘혁명의 도구’로 다큐멘터리를 선택했다고 한다. 여러 투쟁 현장을 카메라에 담던 그녀의 카메라는 이내 성직자인 남편이 일하는 장애인 시설로 향했다. 혁명의 도구였던 카메라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존재들의 삶(장애인의 삶)을 전하는 수단으로 변화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엄마…〉, 〈아이들〉 이전의 이야기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감독은 장애인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면서도 ‘혁명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라고 고민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찍어보라는 동료의 말을 ‘다큐멘터리를 그만두라’는 말로 이해했다고 고백한다. 다큐란 ‘공적인 것’을 담아내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과 양육으로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사적인’ 작업은 혁명과 카메라에 관한 감독의 인식을 크게 바꾸었다.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엄마…〉를 상영한 후 관객들이 봇물 터지듯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장면을 보고서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말을 거는 계기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즉, ‘사적인’ 공간에 갇혀 있던 이야기들이 자신의 영화를 계기로 ‘공적’ 공간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여성, 육아, 일, 모녀 관계 등을 다루는 영화는 소재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미 아는 이야기’라고 고개를 돌려서는 안 된다. 터무니없는 오해이자 심각한 현실 왜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