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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Oct 11. 2023

[BIFF] 켄 로치는 끝끝내 희망을 길어냈지만…

부산국제영화제, 〈나의 올드 오크〉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

United Kingdom, France, Belgium/2023/113

켄 로치 감독/‘아이콘’ 섹션

     

  나눌 게 고통과 슬픔뿐인 사람들 사이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켄 로치는 〈나의 올드 오크〉가 이러한 질문을 고민하는 영화라 말한다. 영국의 한 폐광촌.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집값은 나날이 떨어진다. 어떤 회사는 방문 한 번 하지 않고 수 채의 빈집을 사들인다. 주민들의 박탈감은 커져가고, 자신들이 정부와 자본에게서 버려지고 발로 차이는 삶을 산다고 여긴다. 그런 마을에 모처럼 새로운 사람들이 온다. 그러나 그들은 환대받지 못한다. 그들이 시리아 난민이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들은 마을이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다며 분노하고 영국 정부의 허가로 마을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위축된다. 긴장이 감돈다.


  밸런타인은 광부의 아들로 오랫동안 마을에서 펍을 운영해왔고, 야라는 따뜻한 마음씨에 똑똑한 머리를 가진 젊은 여성이다. 약자들을 돕는 자선 봉사활동을 해왔던 밸런타인은 친구들이 야라에게 저지른 무례에 유감을 표하며 그녀와 친구가 된다. 그러나 적대 관계가 자리 잡은 마을에서 새 친구를 사귀는 건 기존 친구를 잃는다 의미다. 밸런타인은 옛 친구와 새 친구 사이에서 점점 난처해진다.



  영화는 시리아 난민에 적대적인 마을 사람들을 무턱대고 비난하지 않는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 무엇도 제공받지 못하는 마을 주민의 분노·박탈감은 시리아 난민들이 모든 인간이 누려 마땅할 권리를 최소한으로나마 누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하다. 다만 분노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켄 로치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능숙하고 촘촘한 솜씨로 서로 다른 두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저항, 연대의 계기를 모색한다. 밸런타인과 야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난당하고 파괴되는 모두를 위한 식사 모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공론장은 이미 무너졌다. 그럼 희망은 어디서 길어올 수 있는가? 켄 로치는 두 공동체가 가진 공동의 경험에 카메라를 갖다 댄다. 대처 시대의 광부와 망명을 선택한 난민에게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연대를 해봤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을의 청소년이나 난민의 자식들이나 사회적 관계망을 상실한 채 집에만 머물며 우울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문제는 서로의 공통된 경험에 접속하게 해줄 계기다. 영화는 말한다. 거창하거나 혁신적인 답은 없다고. 몸을 부대끼며 타자를 향한 적대적 감정을 성찰하는 것 말고는 다른 답이 없다고. 켄 로치는 이번에도 ‘연대’의 내용을 단단하게 채워 넣으며 희망을 말한다.



  절망의 시대에 이토록 품위 있는 인간애를 여전히 고수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 말은 그가 그려내는 희망이 절망보다 더 작아 보이기도 한다는 의미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절망의 순간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결말부의 희망은 다소 극적이다. 영화가 그려내는 희망이 작위적이거나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처럼 쉬이 도래할 것 같지도 않다. 우리가 수치심을 잃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가 그 정도로 성찰할 수 있는 존재라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과연 이런 모습일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물론 켄 로치는 그가 잘하는 것을 이번에도 잘해냈다. 다만 그의 영화를 보는 나의 감각이 지난 몇 년간 바뀐 듯하다. 나는 더 이상 그가 말하는 희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는 비단 나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과연 절망 속에서도 켄 로치가 끝끝내 길어낸 희망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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