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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Oct 12. 2023

[BIFF]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영화들

부산국제영화제


솔리드 바이 더 씨/Solids by the Seashore

Thailand/2023/93min

파티판 분타릭 감독/‘뉴 커런츠’ 섹션     


  태국 남부의 조용한 시골 마을. 시각 예술가 폰이 마을을 방문하고, 샤띠는 폰의 안내를 맡는다. 크롭티를 입은 폰과 히잡을 쓴 샤띠의 모습은 두 여성이 많은 영역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다. 영화는 보수적‧전통적 관념이 상식인 곳에서 사는 샤띠가 폰을 향한 자신의 마음과 욕망을 조금씩 자각하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좇는다. 이 과정에서 둘의 관계와 폰의 예술 작업은 지속적으로 교차한다. 폰은 방조제가 해변의 자연스러움을 해치는 문제에 천착해 작업을 이어간다. 안전을 지켜주는 방조제가 되레 해변 침식을 가속화하는 역설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이상한 것으로 만드는 이성애 중심 문화와 닮은 데가 있다. 즉 방조제와 전통적 가족 규범은 모두 자연스러움을 제약하는 것들이다. 〈솔리드 바이 더 씨〉는 ‘자연스러움’의 기존 용례를 잔잔하고 자연스러운 드라마 장르의 문법으로 비틀어 풀어낸다.




판타스틱 머신/And the King Said, What a Fantastic Machine

Sweden, Denmark/2023/88min

악셀 다니엘손, 막시밀리언 반 아에르트릭크 감독/‘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섹션     


  영화에 대한 영화를 메타 영화라 부른다. 그렇다면 카메라에 대한 영화는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판타스틱 머신〉은 인류가 450억 개의 카메라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 매일 10억 시간의 영상이 생산되는 시대에 카메라는 무엇을 하고, 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사진의 등장부터, 영화와 TV의 탄생, 유튜브와 SNS 스트리밍 시대까지의 역사를 톺으면서 말이다. 카메라는 때로는 역사를 기록하는 수단이었다가, 때로는 독재와 선동의 도구였다. TV 등장 이후에는 대중을 탄생시켜 우리의 욕망과 생활양식, 소비, 취향을 형성했고, 정보 취득의 핵심 수단이 되었다.


  카메라는 단순히 인간의 수동적 도구 그 이상이다. 카메라는 창조자와 복합적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의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도·주도한다. 주름이 가득한 노년이 되어서도 자기 영화의 ‘기술적’ 측면을 설렘과 흥분으로 설명하는 레니 리펜슈탈을 보라.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 놀라운 도구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카메라의 구도에 담긴 권력과 정보를 독해할 능력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이다.




빔 벤더스의 안젤름 3D/Anselm

Germany/2023/94min

빔 벤더스 감독/‘아이콘’ 섹션     


  독일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 안젤름 키퍼. 그는 독일 역사의 상처를 예술로 질문하는 일을 해왔다. 이를테면 나치식 경례가 법으로 금지된 독일 곳곳을 돌아다니며 나치 경례 촬영을 하거나, 탱크가 지나간 길의 풍경을 회화적으로 재현하거나, 나치가 제멋대로 전유한 독일의 철학·예술 등을 복권하는 일 등 말이다. 그는 나치를 기억의 저편에 두고 과거의 일로 치부하기를 거부하고, 어쩌다 독일이 나치에 동참하게 됐는지를 도발적으로 질문하는 예술가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누군가에게는 ‘금기 파괴자’로 칭송받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반동’, ‘파시스트’라 비난받는다.


  영화는 논쟁적 예술가 안젤름 키퍼의 작업 방식과 예술적 결과물을 천천히 훑으며 관객을 그에 대한 논쟁으로 초대한다. 3D 다큐멘터리로 펼쳐지는 영화의 질감이 퍽 인상적이다. 그의 예술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한 감각을 선사해 예술과 도슨트로 영화의 영역을 확장해내기 때문이다. 엄청난 예산을 들인 상업 액션 영화에서 종종 3D가 어설퍼 보일 때가 있는데, 이 영화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느리고 면밀한 시선으로 오히려 3D의 효율성을 증명한다. 영화의 화두와 기법 모두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물안에서/IN WATER

Korea/2023/61min

홍상수 감독/‘아이콘’ 섹션     


  영화를 찍고자 제주도 모처의 숙소에 머무는 세 청년. 그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촬영할 만한 곳을 찾고 영화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만, 별다른 알맹이는 없다. 감독은 무엇을 찍을지 확정하지 못했고, 때문에 당연히 시나리오도 나오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그럴싸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와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시답지 않은 대화와 함께 시간만 흘러가던 와중, 영화는 삶과 예술의 경계를 질문하며 급작스러운 반전을 이뤄낸다. 별 의미 없어 보였던 대화가 영화를 구성하는 핵심 질문이 되고, 그 핵심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현실의 부조리함이 극적으로 폭로된다. 마냥 즐거운 언덕 위 관광객과 그 아래서 쓰레기를 줍는 여성 그리고 두 세계 사이를 부유하던 남자/감독. 그는 바닷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예술/현실/윤리의 경계를 지우고, 이들을 하나로 포개며, 세계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내놓는다. 바닷속으로 들어간 남자/감독은 ‘컷’을 외칠 수 없다. 그렇게, 아웃포커스로 촬영된 화면을 닮은 세계는 지속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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