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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Dec 11. 2023

[SIFF] 49회 서울독립영화제 스케치


청년정치백서: 쇼미더저스티스/SHOW ME THE JUSTICE

이일하 감독/2023/Documentary/99min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섹션     

  보통 정치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특정 입장과 당파성을 전제로 한다. 사안을 바라보는 입장이 이미 정해져 있고, 관객에게 이를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와 맥락 등을 전달한다(이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이 영화는 조금 다르다. 각각 보수, 진보 정치를 꿈꾸는 두 청년의 뒤를 좇으며 이들이 왜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지, 한국 정치에서 청년의 역할이 있기는 한지를 묻는다. 보통 얼굴을 알리는 청년 정치인들은 ‘특별함’이 있어서 정치에 발탁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 영화는 청년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어떤 계기와 우연히 접합했을 때 ‘성공’한다는 것을, 그들이 자신의 특별함으로 정치에 진입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적 바람이 불고 지형이 바뀔 때마다, 상대적으로 가진 게 없는 청년 정치인들은 더 크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꺾이지 않고 정치인이라는 자리를 욕망하는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영화는 청년 정치가 놓인 열악한 상황에 대해서는 여러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경쾌한 편집 덕에 속도감 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코리안 블랙 아이즈/The Korean Black Eyes

김대현 감독/2023/Documentary/90min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섹션     

  1966년 결성된 걸밴드 ‘올스타즈’는 1971년 리더 키티(임준임)를 중심으로 ‘코리안 블랙 아이즈’로 재탄생했다. 이들은 동남아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유럽 등에서까지 활동했다. 영화는 키티를 중심으로, 여러 멤버의 인터뷰를 따라가며 그 당시를 회고한다. 밴드 활동을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갔다가 부모의 결혼 독촉 등으로 못 살겠다며 다시 밴드를 찾아왔다는 한 멤버의 회고에서 알 수 있듯, 코리안 블랙 아이즈는 여성이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는 시대에 멤버들에게 큰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멤버들의 회고에는 그들이 보냈던 특별한 청춘에 대한 애착이 엿보인다. 다만, 코리안 블랙 아이즈를 멤버 개개인의 회고로만 재현한 것은 아쉽다. 팬들의 목소리, 당대의 사회문화적 분위기 등에 대한 더 두터운 묘사가 함께 이뤄졌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 무언가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개별 회고에 기대 에피소드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그 의미가 잘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해야 할 일/Work to do

박홍준 감독/2023/Fiction/103min

‘본선 장편경쟁’ 세션     

  이 영화의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조선소의 인사팀 대리가 구조조정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 둘째, 정리해고 업무에 괴로워하며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지를 고민하는 것. 한양중공업의 4년 차 대리 강준희는 이 둘 사이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결혼을 앞둔, 파트너가 임신을 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그는 회사에 열심히 다녀야만 한다. 그런데 회사가 불경기를 이유로 동료를 해고하는 임무를 맡긴다면? 준희가 ‘유능한’ 직원이라는 데서 그의 고민은 더 커진다. 맡은 업무를 적확하게 처리할수록 동료들을 향한 해고의 칼날도 더 날카로워지기 때문이다. 준희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해야 할 현실적인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준희는 점점 말을 잃어간다. “너도 이제 똥물 오지게 튀었다”라는 선배의 말에는 쓴웃음을 짓는다. 회사는 정리해고를 결단하면 그뿐이지만, 실제 그 일을 집행해야 하는 사람은 해고자와 같은 노동자다. ‘부끄러움’을 아는 준희는 이 딜레마를 끝내 풀지 못한다. 회사는 사라지고 ‘을’만이 남아서 벌이는 전쟁의 최전선에 선 준희의 고뇌는 구조조정과 노동자가 맺는 복합적 관계를 조명하며 단순한 선악구도를 질문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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