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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Dec 04. 2023

캐나다 영화의 풍광들

2023 캐나다 영화제

브라더/Brother

2022/119min/캐나다

클레멘트 버고 감독 작품

  〈브라더〉는 캐나다 스카버러의 흑인 형제 프란시스와 마이클이 감전 위험에도 송전탑을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위태롭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러나 긴장을 숨길 수 없는 표정으로 송전탑을 오르는 두 형제를 비추는 카메라 구도와 배우의 연기, 음악은 이 장면이 영화의 핵심과 맞닿아 있음을 짐작케 한다. 영화는 형제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형 프란시스가 죽은 이후의) 성인기를 바지런히 오가며 이들이 어떤 시간을 통과했는지를 보인다. 조금이라도 시급을 더 받기 위해 엄마가 밤에 일하러 나가면, 둘은 TV를 본다. TV에는 흑인 범죄자의 범죄 장면이 찍힌 화면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앵커는 이들을 조심하라며, 발견하면 신고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형제는 가난하게, 흑인이 범죄자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 프란시스는 늘 동생 마이클을 챙기고 보호했다. 큰 덩치에 잘생긴 외모로 또래 사이에서 영향력 있던 형 프란시스. 프란시스는 마이클에게 ‘얕보이고 위축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프란시스는 흑인이 범죄자인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종종 또래 집단의 갈등에 연루되고 수시로 경찰 수사의 표적이 된다. 기대와 달리 자신의 삶이 그럴듯하게 흘러가지 않자 프란시스는 상처받는다. 어머니는 큰아들에 대한 기대가 배반당하자 화를 내고, 동생 마이클은 자존심 강한 형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게이이고, 동생과 어머니를 지키고자 했고, 꿈 많은 흑인 청년이었던 마이클은 자신이 어릴 적 두려워했던 흑인 범죄자의 형상에 포박되고, 경찰에 살해된다. 뉴스 속 흑인 범죄자에 대한 그의 유년기 두려움은 그것이 자기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자각에 대한 거부였던 것이다.


  영화는 누구보다 강인했으나 자신에게 미래는 없음을, 혹은 이미 특정한 방향으로 예정되어 있음을 자각한 형의 몰락과 그로 인해 미쳐버린 어머니, 이 모든 걸 가장 가까이서 보고 형을 품은 채 살아가는 동생 마이클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과시하고 억압하는 형제애가 아닌 사랑하는 형의 상실을 보듬는 수단으로서의 형제애를 벼려낸다. 삶, 실패, 흑인, 형제, 가족, 남성성, 사랑을 훌륭히 엮어낸 수작이다.




공적 명령/Les Ordres

1974/108min/캐나다

미셸 브로 감독 작품

  1970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퀘벡해방전선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들을 정부와 경찰이 초법적으로 탄압한 역사를 담아낸다. 영장 없는 체포와 수사, 별다른 절차와 안내도 없는 2~3주간의 구금으로 시민들은 일상이 중단된 채 공포에 떨었다. 구금이 끝나고는 별다른 혐의가 없다며 석방되었는데, 이는 이 사건이 퀘벡해방전선을 위축시키고 겁박하려는 정부의 길들이기 전술의 일환이었음을 가늠케 한다.


  영화가 끝난 후, 박희태 교수는 씨네토크에서 북미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쓰는 퀘벡의 문화적‧역사적 특수성과 퀘벡 분리독립 요구의 등장에 관한 설명을 덧붙였다. 퀘벡해방전선은 테러와 납치 등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했고, 이에 캐나다 정부는 일종의 계엄령을 발동해 이 영화가 그려내는 초법적 탄압을 자행한 것이었다. 피해자가 5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영화는 그 형식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감독은 당시 탄압당한 50명을 인터뷰하고, 이를 5명의 서사로 녹여낸 뒤, 이를 영화에 담았다. 출연한 배우들은 화면 안에서 자기소개를 한 뒤, 자신이 이 영화에서 누구의 역할을 맡았는지를 설명한다. 그러고는 화면이 전환되어 극 영화의 형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배우들이 화면 밖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영화 속 사건에 개입해 들어가는, 배우와 피해를 겪은 실제 인물의 캐릭터가 상호 침투되는 방식으로 영화가 구성되는 것이다. 영화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도 영화 속 인물이 자신의 나이를 1973년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역시 이 영화가 퀘벡해방전선에 대한 정부의 탄압을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설정이라 한다. 실제 사건과 다큐, 픽션이 서로의 경계와 형식을 허물어뜨리며 만들어진 영화인 것이다.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130min/캐나다, 프랑스

드니 빌뇌브 감독 작품

  이 영화를 처음 본 10년 전에 이어 또다시,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는 (사랑의) 약속’에 압도당했다. 한 여성의 기구한 생애와 역사, 사랑과 용서에 관한 놀랍도록 뜨거운 드라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된 '2023 캐나다 영화제'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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