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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Nov 08. 2023

[SIPFF]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영화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로스트 보이즈/The Lost Boys

제노 그레이튼 감독

Belgium, France/2023/93min/‘뉴 프라이드’ 섹션         

 

 

  조는 소년원에 산다. 조만간 판사의 가석방 심사가 있는 듯 보인다. 심사를 무탈히 넘기면 소년원에서 나가 (비록 보호관찰을 받기는 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윌리암이 나타난다. 조의 동료는 넌지시 윌리암이 다른 소년원에서 ‘남자를 덮쳤다’고 말한다. 윌리암을 흉보기 위한 말이었지만 웬일인지 조는 윌리암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조와 윌리암은 몇 마디 말과 행동, 눈빛과 몸짓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이내 과감히 서로를 감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통제되는 소년원에서 두 사람의 친밀성은 단속의 대상이다. 모두가 잠든 밤 벽을 사이에 두고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둘의 모습은 소년원이라는 공간의 물리적 제약이 이성애규범적인 사회와 닮은 데가 있음을 환기한다. 감옥은 그 자체로 동성애가 존재하는 방식에 관한 은유인 셈이다.


  사랑에 빠진 둘의 운명이 가석방 심사 결과에 달렸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둘은 자기 관계에 자율성이 없다. 판사가, 감옥이, 보호자/선생님이 둘의 사랑을 결정할 권력을 갖는다. 그중 누군가는 선한 마음으로 둘을 대하지만, 여기서 그들의 선함과 악함은 중요하지 않다. 관계의 결정권이 타자에게 있다는 점만이 중요하다. 함께할 미래가 불확실해지자 윌리암은 일부러 불을 내고, 소란스러운 틈을 타 조와 함께 탈옥을 감행한다. 그러나 곧바로 붙잡힌다. 조의 가석방은 물 건너가고, 나이가 찬 둘은 더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성인 교도소로 이감된다. 영화는 그곳에서 둘의 사랑이 다시금 이어질 거라 암시하고는 끝난다. 감옥을 동성애 친밀성의 자율성과 연계해 그려낸 이 영화의 감정선이 때로는 과잉으로 느껴지지만, 너무도 적확하게 가슴에 꽂히기도 한다.     




인 베드/In Bed

니잔 갈라디 감독

Israel/2022/85min/‘월드 프라이드’ 섹션    

 


  (텔아비브일 것으로 짐작되는) 이스라엘의 한 도시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열린다. 친구 사이인 게이 남성 가이와 이성애자 여성 조이도 퍼레이드에 참가한다. 그런데 곧바로 총소리가 나고 축제는 아수라장이 된다. 둘은 가이의 집으로 대피하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힌 후 긴장과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둘만의 파티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둘은 그날의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한다.


  가이의 말마따나 게이들은 우울할 때 그라인더(데이팅 앱)를 켠다. 몇몇 남자가 가이의 집에 오고, 가이는 그들과 육체적 친밀성을 나눈다. 약물도 있다. 약물은 퇴폐한 자들의 사치품으로 여겨지는 일이 많다. 하지만 약물은 사회적 약자의 취약한 마음을 숙주 삼는 경우가 더 많다. 아들을 걱정하면서도 부정하는 부모님과의 통화와 테러의 트라우마는 가이가 연루된 약물, 섹스의 순환을 가속한다. 여기에 자해까지 끼어든다.


  그러던 중 가이가 테러를 피하다 눈여겨본 남자 단이 방문한다. 둘은 비슷한 공허함과 우울감을 느끼는 중인데도 자꾸만 어긋난다. 마초적으로 보이는 단은 여자친구가 있고, 게이 라이프는 철저히 숨기며, 게이 대상 폭력을 일삼는 포비아 친구들이 있지만 지금은 친구들로부터 게이라 의심받는 상황이다. 가이는 그의 비밀을 알아갈 때마다 실망이 커지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매혹도 커지며 단이 주는 강한 약물에 점점 더 취해간다. 여기에 조이가 개입해 가이를 두고 다툼을 벌이던 중 사망해버리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단은 경찰에 신고하려는 가이를 제압한 후 약물 강간한다. 가이는 단이 테러범이 아닐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히고, 가이를 강간하던 단은 약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다.


  어지럽고 빠른 전개지만, 게이들이 느끼는 근원적 소외에 그 토대를 둔다는 점에서 영화의 플롯은 흡인력을 얻는다. 공포, 좌절, 성애, 프라이드, 쾌락, 우정, 사랑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게이의 시간성을 하룻밤에 압축한 이 영화는 게이들이 놓인 취약성의 토대를 드러낸다. 가이가 하룻밤 새 발생한 수많은 사건사고로 넋이 나간 상태로, 약에 취해 발가벗은 채 거리를 배회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자신이 견뎌내야만 하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버린 개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 보인다. 중독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삶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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