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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Oct 24. 2023

[SAFF] 인간과 동물의 관계 맺음에 관한 영화들

제6회 서울동물영화제 스케치



쇼잉 업/Showing Up

켈리 라이카트 감독/미국/2022/108min/'특별전 1' 세션


  〈쇼잉 업〉은 개인적으로 2021년 최고의 영화였던 〈퍼스트 카우〉를 연출한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에서 훔친 소를 다정히 돌보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그녀만이 펼쳐낼 수 있는 이야기를 선보인 감독은 이번에도 영화에 동물을 들여온다. 곧 전시를 앞둔 예민한 예술가 리지의 작업실에 비둘기가 날아들고, 반려묘가 비둘기를 다치게 하는 사건이 생긴다. 리지는 더는 신경 쓸 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에 다친 비둘기를 창밖에 버린다. 그런데 동료이자 이웃인 조가 다친 비둘기를 구조해 리지에게 맡기고, 리지는 자신이 비둘기를 버렸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그 비둘기를 돌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귀찮은 비둘기에게 조금씩 마음을 쓰기 시작한다.


  리지는 사람 모양의 작품을 만드는 조형 예술가다. 즉, 자신이 버린 비둘기를 돌보게 된 리지의 경험은 그녀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어떤 인간상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리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던 작품이 가마에서 잘못 구워져 일부분이 타 버리는 사건이 생긴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람들은 한쪽이 타버린 그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리지와 조가 내내 붕대로 감싼 채 두었던 비둘기는 누군가가 그 붕대를 풀자 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며 날아오른다. 내내 리지의 속을 긁던 사건들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리지는 자신이 버린 비둘기를 돌보며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고(인간상을 만들었고), 비둘기가 부상에서 회복했듯 갈등을 빚었던 인물과 나란히 걷는다. 켈리 라이카트는 이번에도 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섬세한 변화를 절묘하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라우디 걸/Rowdy Girl

제이슨 골드먼 감독/미국/2022/72min/'비전과 풍경' 섹션


  〈라우디 걸〉은 목축업자였으나 이제는 생추어리 운영자가 된 부부와 그들이 돌보는 동물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텍사스에서 생추어리를 꾸려나가는 부부는 주변 농가를 채식 기반 농가로 전환하는 일을 독려하고 돕는다. 돌봄 제공자이자 동물권 활동가로서의 굳은 의지가 돋보인다. 무엇보다 고기로 환원되지 않은 동물의 얼굴이 감동적이다. 동물들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과 그들이 부부와 교감하는 장면은 큰 평화감을 준다. 부부의 이야기보다 동물들의 생활을 더 많아 담아줬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들 정도다.


  그러나 영화가 내내 육식을 악마화하는 계몽적 어투를 유지하는 데에서는 고민이 들었다. 현재의 고기 소비 맥락을 고려할 때, 육식 악마화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육식 악마화는 비인간 육식 동물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이 영화에 한정된 질문은 아니겠지만, 진보적 이슈를 계몽적으로 발화하는 것의 효과와 당위도 계속 고민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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