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wr Dec 15. 2020

자기 생존만이 중요한 '미친 여자'의 존재론

넷플릭스 영화 〈콜〉(2020)

 엄마의 간병을 위해 집으로 내려간 서연은 낯선 이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서연의 집에 살고 있는 영숙이다. 하지만 시간이 다르다. 둘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시간에 있다. 20년의 시차를 두고서.


  둘에게는 각각 시간적 유리함이 있다. 서연은 영숙의 미래를 알 수 있고, 영숙은 서연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에 개입하여 결과를 바꿀 수 있다. 영숙이 죽었던 서연의 아버지를 살려준 것을 계기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런데 영숙의 광기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넷플릭스 영화 〈콜〉은 20년의 시차를 둔,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의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다. 설정만으로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긴장감 넘치는 연출, 공포의 감정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환기시키는 주제 등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전종서 배우가 연기한 영숙이 압권이다. 그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어려서부터 정신병원을 들락거렸고, 무당인 그의 새엄마는 악령을 내쫓겠다며 영숙을 괴롭혔다. 그래서 영숙은 어려서부터 내내 갇혀 지냈다. 영숙에게 자유가 절실한 이유다.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살인도 문제없다. 그에게 살인은 윤리·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속박되지 않는 자유만이 그녀의 유일한 윤리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에 규정되고 감금당해온 그에게 자유는 곧 생존이다.


  영숙에게서 자기 생존만이 중요한 ‘미친 여자’의 존재론을 엿볼 수 있었다. 남들이 하라는 대로만 살아왔던 그가 서연과의 통화를 계기로 처음 자유를 얻었을 때, 그가 느낀 해방감의 크기는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이를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설픈 도덕을 내세우며 자신을 멈추려는 자들이 우스웠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광기’를 거침없이 내뿜었을 것이다.


  자기 생존만이 중요한 ‘미친 여자’의 존재론. 영숙은 20년 전을 사는 사람이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어떤 또래 여성 집단과 닮은 데가 있다. 그들 역시 타인이 억눌러온 자신의 자유를 맛본 이후,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영숙이 그러하듯이.


  누군가 영숙의 광기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영숙이 영화 속 인물이라서다. 현실세계에서 영숙의 광기를 허락할 수는 없다. 그로 인해 누군가가 죽을 것이기에. 하지만 영숙의 광기에 대해 공감했다면, 이 공감을 어떻게 현실세계에서 이어갈 것인지 고민해볼 수는 있다. 시작은 ‘그녀들의 광기'를 이해하기다. 왜 그들이 그렇게 화가 났는지를 듣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이런 노력을 기울인다면, 영숙의 광기를 공유하는 2020년의 그녀들이 영화 속 영숙의 길을 따르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들의 분노가 '살인'으로 이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영숙이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다.

이전 07화 가장 오래된 낙인, '악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