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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Jan 12. 2021

안희정·오거돈·박원순의 피해자에게 손가락질하는 자들에게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2020)

그들이 '좋은 남자'의 지위를 갈망하는 이유


  당연하게도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은 '좋은 남자'였을 것이다. 폭스뉴스의 회장 로저 에일스가 그러했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밤쉘〉은 폭스뉴스의 회장이었던 로저 에일스의 성추문과 그에게 저항한 세 명의 여성 앵커 이야기다.


  로저가 성희롱, 성추행으로 고소당하자 모든 주변인이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지 언론에 증언했다. 심지어 피해자들까지도 그의 선한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무슨 목적으로 로저 에일스의 '사소한 결함'을 트집 잡냐고 공격당하는 와중에도 말이다.


  하지만 로저 에일스(그리고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의 결함은 사소하지 않다. 그들이 '좋은 남자'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사소한 결함'이, 그들이 안주해온 젠더권력이 우리 사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윤리적·지적·도덕적·사회적 무책임을 방패 삼아 떵떵거리며 좋은 남자 행세를 해올 수 있었다. 그 이면의 추함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추함이야말로 그들이 좋은 남자의 지위를 갈망하는 근본적인 이유였음에도.



폭스뉴스는 바뀌지 않겠지만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폭스 뉴스의 스타 앵커지만, 여성을 향한 비아냥에 응수하고 대상화에 저항하며 '여성의 날'에 화장하지 않은 채로 방송에 출연한 후 로저 에일스에게 밉보인다. 얼마 뒤 그레천은 해고당한다. 그레천은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그는 오랫동안 로저 에일스에게 당한 성희롱·성추행의 증거를 모아 왔었다. 성공과 삶의 안정 등의 이유로 그 증거 앞에서 당당할 수 없었지만 이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레천은 로저 에일스를 고소한다.


  폭스 뉴스의 또 다른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는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회에 사회자로 나서 트럼프에게 '난감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여성비하 발언이 과연 미국 대선주자의 품격에 맞냐는 질문이었다. 그날 밤, 트럼프는 메긴을 조롱하는 트윗을 15개나 날렸다. 다른 방송에서는 그녀가 '피 흘리는 날'이었나 보다고 비아냥거렸다. 얼마 뒤 그레천이 로저를 고소했다. 메긴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메긴 역시 로저로부터 성희롱·성추행을 당했지만 그녀는 폭스뉴스의 간판일 뿐 아니라 로저와도 긴밀한 사이다. 오랜 고민 끝에 메긴은 침묵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은 로저 에일스의 (적어도 폭스뉴스에서는) 마지막 피해자다. 성공한 앵커가 되고 싶다는 야망을 가진 케일라는 로저의 요구에 응한 후 괴로워했지만 그레천과 메긴의 용기에 힘을 얻는다. 하지만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은 로저의 해임을 공표하는 순간에도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피해자 보상금보다 가해자 퇴직금에 더 많은 돈을 지불했다. 케일라는 폭스뉴스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서 폭스뉴스를 떠난다. 


  케일라의 경력과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그레천과 메긴에게는 '피해자'라는 꼬리표가 영원히 따라다닐 것이다. 폭스뉴스를 비롯해, 그녀들을 괴롭힌 거의 모든 것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뀐 것도 있다. 적어도 그레천, 메긴, 케일라의 삶은 바뀔 것이다. 그들의 아픔과 용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삶도 바뀔 것이다. 피해자는 온갖 수모와 불안을 겪겠지만, 피해자만 끊임없이 자책하겠지만, 그들의 용기는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었던 고통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었다. 


  피해자에게 손가락질하는 파렴치함보다 피해자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공감이 더 많은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더 이상 피해자와 그들의 연대자가 진이 빠진 채 허망함을 느끼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밤쉘〉이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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