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어느 날 누군가 평온한 시골집을 찾는다. 그는 사담 후세인으로 15만 미군의 추격을 받는 중이다. 후세인은 집 주인이자 농부인 알라 나미크에게 자신을 숨겨달라고 요청한다. 나미크는 미군의 보복과 사담 후세인의 권위, 무엇보다 가족의 안위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져 걱정에 휘말리지만 손님을 접대하는 농부의 전통에 따라 후세인에게 235일간 비밀 거처를 마련해준다. 그는 사담 후세인의 주치의, 경호원, 미용사, 운전수, 요리사 역할을 동시에 했으며 무엇보다 그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결국 미군에 발각된 후에는 8개월간 수감되어 끔찍한 고문과 성 학대로 유명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영화는 알라 나미크의 회고를 통해 세계를 들썩이게 한 이 모든 사건을 차근히 톺으며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려준다. 평범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사건을 홀로 마주해야만 할 때 어떤 태도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질문하는 매우 흡인력 있는 다큐멘터리다.
국제경쟁
노르웨이의 급진적 기후 활동가이자 촉망받는 트럼펫 연주자 트리네는 어느 날 명망 있는 음악인에게 오디션 참석을 제안받는다. 문제는 트리네의 집에서 오디션장인 오슬로까지 1,500킬로미터가 넘는다는 점. 비행기를 타면 금방이지만 기후 활동가로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 트리네는 히치하이킹으로 오슬로에 가기로 한다. 당연히 온갖 어려움과 불편함, 두려움이 수도 없이 발생하고 연습조차 여의치 않다. 트리네는 과연 오디션장에 제때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좋은 환경에서 연습하고 컨디션을 관리해온 다른 연주자들보다 잘할 수 있을까?
기존 사회의 작동 방식을 비판하는 신념을 갖고 살아가려면 결연하고 혹독한 ‘연습’이 필요하다. 트리네는 오슬로를 향한 여정 곳곳 그리고 그녀의 상상 속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트럼펫을 연주하는데, 이 장면에서 그녀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트럼펫을 연주할 수 있는 미래 말이다. 트리네에게 동의하든 그 반대 입장이든 이상과 현실, 타협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결연한 의지에서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즈
1973년 칠레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아옌데가 집권하고 같은 해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의 일을 다룬 영화로, 2019년 라울 루이스 감독의 비공개 촬영본을 발견한 동료 감독이 이를 편집해 복원했다고 한다.
영화 도입부와 말미에는 당시의 혁명적 사회 분위기를 포착한 다큐멘터리 장면이 나오고 중간에는 픽션 장면이 나온다. 어딘가 관료적으로 보이는 당과 당의 신중함이 답답한 노동자 집단의 논쟁, 지식인과 소부르주아지들이 자신들이 과연 혁명의 주체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논쟁, 노동자들이 점거한 공장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을 처리하는 장면, 도둑질로 공장에서 쫓겨난 남자가 우익 폭력단에게 사주받는 장면 등 혁명 직후와 쿠데타 직전의 난맥상을 고루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미공개 영상을 이어 붙였다는 점에서 영화적으로도, 혁명이 결코 하루아침에 세상을 완벽하게 바꾸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다는 점에서도 ‘공백’이 많은 영화다. 그러나 이 공백은 관객에게 영화에 생산적으로 개입하기를 요청한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며 혁명의 체계 없음에 고개를 저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오히려 반대다. 혁명은 이 모든 지난한 난장을 생산적 힘으로 전환하는 역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제25회 국제전주영화제에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위 영화의 상영 시간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