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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Dec 26. 2020

거창한 질문과 진부한 답변의 언밸런스

넷플릭스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2020)

  망한 세상이라도 당신은 귀환할 것인가? 〈미드나이트 스카이〉(2020)가 던지는 질문이다.


  2049년, 지구는 대기 오염으로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했다. 하지만 지구가 망하기 전, 생명이 거주할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아 탐사를 떠난 에테르 호의 선원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 발견한 행성 ‘K-23’이 생명이 거주하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들은 설렘을 품고 지구와 교신하고자 한다.


  지구에 남아 있던 과학자 오거스틴은 온갖 어려움 끝에 에테르 호와 통신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에테르 호의 선원들에게 지구의 상황을 전해준다. 설렘이 혼란으로 바뀐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에테르 호의 선원들은 ‘K-23’ 행성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고, 고향인 지구 돌아가 의미 있는 마지막을 맞이할 수도 있다. 에테르 호의 선원들은 각자의 이유로 나름의 선택을 내린다.


  문제는 모든 선택의 동기가 가족주의라는 점이다. ‘K-23’ 행성을 선택한 자들은 출산을 앞둔 커플이고, 지구로의 귀환을 선택한 자들은 고향에서 보낸 가족과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에테르 호에 지구의 상황을 전하는 오거스틴의 동기 역시 딸을 향한 회한의 감정이다.


  이렇게, ‘망한 고향일지라도 돌아갈 것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은 가족주의의 자장磁場 안으로 억지로 끌려들어 가고 만다. 영화가 던진 질문의 가능성, 상상의 영역을 스스로 제한하고 축소하는 바보 같은 짓이다. 〈미드나이트 스카이〉를 ‘거창한 질문과 진부한 답변의 언밸런스’로 요약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아무런 의심 없이 '낭만적이고 행복한 가족'의 이상을 차용한 감독의 순진한 무능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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