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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Mar 28. 2022

'개고기', 문제틀을 바꾸자

영화 〈누렁이〉, 〈도미니언〉 리뷰


  다큐멘터리 〈누렁이〉(2021)와 〈도미니언〉(2019)을 연달아 보았다. 〈누렁이〉는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둘러싼 여러 관계자들을 만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개고기 찬반론자, 동물권 단체 활동가, 개 농장 운영자, 정치인 등 개고기 문화에 대해 발화해온 사람들을 두루 만나는 이 영화는 개고기를 둘러싼 전반적인 논의 지형을 짚는다.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보편적’ 정서, 개와 인간의 친밀함, 불법적‧비인도적 도축 등을 문제 삼고, 찬성론자들은 업계 종사자들의 생존권, 식문화 차이 등을 거론한다. 개인적으로는 개가 도살되는 과정을 알게 된 후 개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지만, 개고기 업계 종사자들의 생존권 문제 역시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에 한 동물권 단체가 2천 만 원 상당의 돈을 지불하고 개 농장에 갇혀 있던 개들을 구조한 후 농장을 폐쇄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적당한 보상책을 마련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함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의 동물권과 인간의 생존권이 대립하는 문제는 사회적 합의와 입안자의 의지만 있다면 어느 정도 해소 가능하다. 문제는 식문화에 관한 것이다. 꼭 개고기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개가 소‧돼지‧닭과 다른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다. 소‧돼지‧닭도 개와 똑같은 동물이고, 개만큼이나 인지‧감성 능력을 지녔는데 왜 ‘개고기’만 안 되느냐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누렁이〉 스틸컷


  이런 주장에 응답하기 위해선, 〈누렁이〉에는 몇몇 장면을 통해 다소 불명확하게 제시되지만, 호주에서 제작된 〈도미니언〉에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물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를 포함한 모든 동물은 도축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공포에 시달린다. 인간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동물에 대한 분풀이식 학대 역시 일상적으로 자행된다. 공신력 있는 단체들이 공인한 ‘인도적’ 도축 방법이 있지만, 〈도미니언〉에서 알 수 있듯 이는 어처구니없는 말장난일 뿐이다.


  〈도미니언〉은 두 시간 내내 인간에 의해 잔인한 방식으로 사육‧도축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처절한 비명소리와 몸부림 때문에 가만히 앉아 보고 있기가 힘들다. 도대체 우리는 동물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은 고통스러운 죄책감이 몰려온다. 인류 역사상 전쟁으로 죽은 인간의 숫자가 6억 2천만 정도인데, 인간은 사흘마다 같은 숫자의 동물을 죽인다(심지어 어류는 제외한 숫자다). 그마저도 동물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인간의 이중성, 내 눈에 보이지만 않는다면 동물이 어떤 방식으로 죽든 상관없다는 인간의 위선에 괴로웠다. 나 역시 그 한가운데 있다는 점에서는 더더욱. 그리하여 ‘인도적 도살은 없다’, ‘도살장에서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공모자다’라는 〈도미니언〉의 주장은 힘을 얻는다. 문제는 ‘개와 소‧돼지‧닭은 다른가’가 아니라, ‘인간은 왜 잔인한 방식으로 동물을 죽이는가’이다.


〈도미니언〉 스틸컷


  이렇게 본다면, ‘개고기 반대’는 개가 특별한 동물이어서 하는 주장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개로부터, ‘합법’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개로부터, 인간이 동물에게 자행하는 모든 폭력에 저항하는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다.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의 저자 중 한 명인 섬나리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공장식 축산에는 반대하면서도 정작 음식점에서 “음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라는 시위는 손가락질하는 모순에 의문‧분노를 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뭐지? 저 식탁 위 동물들이 안 보이나? 저 동물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걸까?” 우리는 이 거대한 간극을 우리와 가장 친밀한 동물인 개로부터 매울 수 있다. 너무도 가까이 있지만, 동시에 아득히 멀리 있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거리를 말이다. 이제는 개고기에 관한 문제틀을 바꿔야 할 때다. 인간의 편익이 아닌 동물의 고통에 초점을 맞출 때, 개고기 문제를 비롯한 여러 동물권 이슈는 냉소와 분노만을 자아내는 소모적 논쟁이기를 그칠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에 있는 〈누렁이〉와 〈도미니언〉의 시청을 권한다. 잔혹한 장면이 보기 힘들더라도 끝까지 봐야 한다. '동물의 고통'이 그저 듣기 좋은 '교양'에 그치지 않음을, 피로 얼룩진 처절한 단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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