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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Mar 17. 2021

고양이를 버린 하루키가 알지 못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고양이를 버리다〉(2020)

 역사학자 임지현은 《기억 전쟁-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2019)에서 ‘연루된 주체로서의 책임’의 문제를 다룬다. 젊은 세대가 떠들썩한 역사문제에 시큰둥한 이유는 자신들이 그 일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행위’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들은 무죄가 맞다.


  하지만 임지현의 제안처럼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과 그 과거를 기억할 책임을 구분”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직접적인 행위의 문제와 달리,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지는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지의 문제가 ‘연루된 주체로서의 책임’을 낳는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짧은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는 이 문제를 다룬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릴 적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버리러 바닷가에 갔고, 고양이를 버렸다. 근데 놀랍게도 집에 돌아오니 버린 고양이가 그들보다 먼저 돌아와 있었다. 바닷가와 집은 꽤 먼 거리였고, 두 사람은 고양이를 버린 후 자전거를 타고 바로 집으로 왔는데도 그랬다. 부자父子는 신기한 듯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는데, 이 알 수 없는 수수께끼는 아버지와 하루키가 공유한 수많은 수수께끼 중 하나로 남았다.


  이런 우연적이고 사적이며 일상적인 사건들이 모여 ‘나’를 이룬다. 우리가 개체로서의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나를 구성하는 경험을 완벽하게 공유하는 다른 존재의 불가능성에 있다. 우연적 사건이 수없이 쌓여온 고유한 궤적이 ‘나’라는 자의식을 형성한다. 수많은 '나'가 모여 형성되는 사회와 역사도 그렇다.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사실은 없다. 모든 것이 우연적 사건이 중첩된 결과물이다.


  모든 것이 우연의 결과물이라면, 역사에서 책임의 문제는 사라지는 걸까? 하루키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그는 오히려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루키의 아버지는 불과 일 년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난징 공략전에 참가하지 않았다. 하루키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마음의 짐을 덜어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가 ‘연루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하루키가 난징대학살 가해자의 죄를 혈연으로 계승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나, 사회, 역사가 우연적 사건의 집합이라면, 하루키와 하루키의 아버지가 난징대학살에 직접 연루되지 않은 것도 우연에 불과하다. 난징대학살의 직접적인 가해자인지 혹은 그 가해자의 후손인지의 여부로 책임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하루키의 우연은 책임을 말살하지 않고 부여하는 데로 나아간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의 문제를 너무나 가볍게 여긴다. 당장 5·18과 세월호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그 일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왜 소란 피우고 세금을 쓰냐고 따진다.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고 나서 궁금해졌다. 하루키가 어릴 적 고양이를 버린 일화에서 시작해 역사적 기억의 문제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이 길고 어려웠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도 하루키처럼 긴 시간이 지나면 기억과 책임의 문제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들에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기를 멈추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역사를 책임감 있게 기억하는 것에 관한 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지만,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하루키의 문제의식은 훌륭하지만, 생각의 중지에 다다른 기억의 문제에 가닿기에는 그 층위가 낮다. 앞으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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