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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Mar 09. 2021

시詩, 일상 언어에서 보편 언어로의 도약

황현산,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난다, 2018)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은 '문학적 시간'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문학적 시간을 '평소에 염두에 두지 않았던 모순에 갑자기 의문이 생기는 시간'으로 정의한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일상에 머무름으로써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인 것이다. 나는 아래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또래 소녀에게 성폭행을 시도하고 살해한 19살 청년과 위대한 시인 보들레르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죽음 속에서 삶을 찾았다. 하지만 방법이 달랐다. 19살 청년이 남긴 기록을 보면 그가 평소 죽음을 '예술적'으로 동경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고단한 삶의 도피처로 예술적 죽음을 갈망해왔고, 죄 없는 청춘을 그 잔혹한 욕망의 희생자로 삼았다.


  보들레르는 달랐다. 그 역시 힘든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죽음 이후에 얻게 될 휴식을 동경했고, 동반 자살한 연인이 죽음 이후에 완성할 사랑을 꿈꿨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자살을 시도하지도 않았고, 남을 죽이지도 않았다. 대신 죽음 이후의 삶을 현실 세계로 끌어오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사후의 찬란함을 시로 형상화하여 현실에 빛으로 돌려주고자 시를 썼다.


  같은 예술적 욕망을 가진 사람의 삶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살인자 청년과 시인 보들레르의 차이점은 윤리다. 19살 청년은 예술적 열정을 파괴적으로 사용했지만 보들레르는 이를 세상을 빛내기 위해 썼다. 보들레르의 예술적 열정은 '현대시의 윤리'가 되어 쓸쓸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달래준다.


  그런데, 19세기에 살았던 프랑스 시인의 시가 어떻게 21세기의 한국 독자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걸까? 시가 '만국 공통 문법'이기 때문이다. 시적 언어는 개인의 내밀한 마음과 공공의 세계 사이 그 어딘가에 있다. 특수하고 개별적인 경험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이 시와 만나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시적 언어가 내면과 세상 사이를 매개하는 번역어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들레르에게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또 다른 특수하고도 보편적인 언어를 찾아 우리 주변의 빛나는 시로 눈길을 돌린다.


  일상에서, 사회적 사건에서, 역사 속에서, 시와 소설에서, 유년의 추억에서 문학적 시간의 똬리를 틀고 앉은 황현산의 글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삶은 더 많은 문학적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고 우리의 외로움은 시가 되어 울러 퍼질 것이다. 고인이 된 그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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