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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사회의 이미지를 한껏 부풀리는 영화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

by re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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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생실습(Teaching Practice: Idiot Girls and School Ghost 2)

김민하|Korea|2025|94min |World Premiere |12+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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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길을 잃어버린 ‘아메바 소녀들’


감독은 전작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에서 수능이라는 거대한 미로를 비껴가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코믹한 호러로 선보인 바 있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교육’이라는 폭력적인 체제의 우회로를 마련하는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교생실습〉은 독립적으로 전개되는 전작의 후속편이다. 모교에 교생으로 온 은경은 음침한 분위기의 세 학생이 흑마술 동아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도 못했는데도 언어, 수리, 외국어 모의고사에서 각각 전국 1등을 차지한 학생들이었다. 교장은 아무 일도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있다 가라’고 지시했지만 선생으로서의 사명감이 넘치는 은경은 그러지 못하고, 흑마술 동아리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한다.


전작이 학생들에게 수능이 얼마나 거대한 압박감으로 작용하는지의 문제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겨냥하는 과녁이 더 많다. 공교육의 권위 하락, 사교육의 득세, 참된 스승의 부재, 실용성과는 관계없는 평가를 위한 평가, 과목별 요구사항의 충돌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은경이 계승하는 식민지 저항 교육의 계보까지. 그러나 너무 많은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리다 보니, 무엇하나 제대로 꽂히는 것 없이 흐지부지된다. 여기저기 문제의식을 흩뿌리고, 갈무리해보려 시도는 하는데 무엇하나 핵심을 찌르는 풍자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전작의 성취를 인상 깊게 기억하기에 더욱 아쉽다. 스스로를 구원한 1편의 아메바 소녀들과 달리, 이번에는 선생에게 ‘구조’되는 아메바 소녀들이 어째 더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다.




이반리 장만옥(Manok)

이유진|Korea|2025|108min |Asian Premiere |12+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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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레즈비언의 유쾌한 시골 마을 이장 도전기


오랫동안 레즈비언 바를 운영해온 중년의 레즈비언 장만옥은 ‘요즘 애들’의 정서가 어렵다. 조금은 짜증이 나기도 한다. 비건 음식에 굴소스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항의하는 세대의 정서는 아무래도 만옥과는 맞지 않는다. 결국 만옥은 자신의 술집이 더 이상 퀴어퍼레이드의 뒤풀이 장소일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바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죽은 어머니가 남긴 빈집으로.


그녀가 내려간 고향 마을의 이름은 이반리(‘이반’은 이성애자를 지칭하는 ‘일반’을 패러디한 퀴어들의 자기 호칭이다). 이반리에는 오랫동안 이장을 해온 중년 남성이 있다. 만옥의 전남편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마을 운영 방식에 불만이 많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러나 적극적이며 똑 부러진 만옥은 금세 마을 사람들에게 ‘물불 안 가리고 뒤집어엎을 사람’이라 인식되고, 마을을 바꾸고 싶다는 사람들의 열망이 그녀에게 모이기 시작한다. 만옥 역시 독거노인 돌봄과 이권 독점 등 그간 도외시된 중요한 문제와 골칫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만옥의 전남편은 끝내 그녀가 ‘동성연애자’라는 걸 폭로하며 만옥은 또 한 번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혐오 세력과 연대하는 퀴어들의 대결 구도에서, 만옥은 끝내 이장의 자리에 오른다.


이 영화는 주민 자치, 풀뿌리 민주주의, 돌봄 등의 이슈를 만옥의 퀴어 서사와 엮는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서 놀랍도록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양말복 배우가 만옥 역을 맡아 이번에도 넉넉히 극을 이끌며, 앞선 이슈에 더해 퀴어 친족과 퀴어 롤모델, 세대 간 퀴어의 연결 등의 이슈 역시 코믹한 드라마 장르에 버무린다. 결말부에서 ‘영화’보다 ‘정치’가 두드러지는 점은 다소 전형적이어서 호오가 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옥의 마지막 대사가 들려주듯, 이런 ‘환상’적인 전개와 결말은 종종 퍽퍽한 현실을 견뎌낼 용기와 유쾌한 기분을 제공하기도 한다. 동시대의 여러 퀴어 이슈를 연대의 틀 안에서 적절히 버무린 기분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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