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라트>
내게 〈시라트〉는 규범을 벗어난 퀴어한 삶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상실로 만들어낸 공동체에 관한 영화로 다가왔다. 먼저 규범. 레이브 파티가 한창 진행 중인 사막에서 레이브 파티를 좇아 떠난 딸이자 누나를 찾아나선 루이스와 그의 아들 에스테반. 파티장과는 영 안 어울리는 이들이 이질적인 레이브 파티원들과 한 팀이 되는 건 군인의 개입으로 파티가 중단되면서다. 루이스와 에스테반은 또 다른 파티장으로 가서 딸과 누나를 찾고 싶은데, 3차 대전에 준하는 혼란이 발생한 터라 군인들이 그들의 앞길을 막아선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경로를 이탈해 또 다른 레이브 파티를 향하는 무리를 뒤따른다. 탈주의 시작이자, 이질적인 집단이 함께하는 동행의 시작이다.
이들의 탈주는 이중적 의미에서 규범을 비판한다. 사회가 강제하는 경로가 개인의 간절한 지향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한 번, 그리고 어차피 거대한 혼란으로 망해가는 세상에서 굳이 규범을 따라봐야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을 거라는 점에서 또 한 번. 규범은 자기 자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자주 어긋난다. 게다가 규범에의 복종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규범과 탈주에 관한 장면은 영화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장애를 가진 남자가 탈영을 노래하는 장면, 사막을 가로지르는 군부대 행렬을 피해 가는 장면, 무엇보다 세계가 망해가는데도 레이브 파티장으로 향하겠다는 집념 등등.
그리고 그 여정을 누구와 어떻게 함께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다. 루이스와 에스테반, 그리고 레이브 파티원은 레이브 파티장을 향한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거대한 스피커에서 나오는 레이브 음악은 파티원들에게는 몸을 매개로 자기 자신을 오롯이 느끼는 경험의 토대이지만, 루이스에게는 그저 소음일 뿐이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임시로 모험을 함께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때문에 이들의 동행은 내내 긴장감을 유발한다. 레이브 파티원들이 루이스와 에스테반을 버리고 떠나지는 않을지, 언젠가 루이스가 폭발하지는 않을지의 긴장은 영화 중후반까지도 계속된다.
이들은 서서히 거리를 좁힌다.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때로는 둘 사이의 경계가 옅어지는 것에 묘한 거부감도 느끼면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상실의 공유다. 규범을 이탈하는 이 위험한 여정에서, 에스테반이 죽고 파티원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파티원들이 사막 위 지뢰밭에서 죽어나가는 장면은 규범 탈주의 여정이 예측 불허한 위험으로 가득 차 있음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영상화한다. 이질적인 두 집단이 하나의 공동체로 완전히 거듭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이들은 상실의 슬픔을 공유하며, 탈주의 여정이 위험천만한 도박일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딸 찾기’와 ‘음악으로 자기 자신을 느끼기’라는, 영 화합하기 어려워 보이는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완전히 기댄 채 모험을 이어가기로 결의한다. 탈주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이어진다.
황홀한 몰입을 선사하는 레이빙 장면과 예측불허로 터지는 지뢰밭 장면이 바로 맞닿게 연출한 신은 이 영화의 백미다. 패배와 슬픔으로 얼룩지더라도 비규범적 삶의 지향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어쩌면 삶 그 자체일 것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머리카락처럼 얇고 칼날처럼 날카롭지만('시라트'), 결코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