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되고 굴절되지 않은 레즈비언 욕망

넷플릭스 영화 〈반쪽의 이야기〉(2020)

by rewr

중국계 이주자인 엘리 추는 뛰어난 글솜씨를 가졌다. 그래서 돈을 받고 친구들의 과제를 대신 작성해준다. 그러던 중 남학생 폴 먼스키로부터 연애편지 대필 의뢰가 들어온다. 상대는 학교 제일의 퀸카 애스터 플로레스. 엘리는 애스터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점차 그녀에게 빠져든다.


애스터를 욕망하는 앨리는 레즈비언이다. 하지만 그녀의 욕망은 상대에게 직접 향하지 못한다. 남자인 폴의 연애편지를 경유해야만 애스터에게 도달한다. 즉, 레즈비언 욕망은 이성애 남성 욕망을 거쳐 경유되고 굴절되어야만 안전한 관계로 여겨져 승인된다.


2.png 〈반쪽의 이야기〉 스틸컷 ⓒ넷플릭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엘리가 자기 욕망을 직접 드러내는 장면이다. 애스터가 트리그라는 남자에게 청혼을 받을 때, 엘리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NO"라고 소리친다. 엘리가 애스터를 직접 욕망하는 행위가 이성애 결혼을 망치는 파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엘리와 애스터는 중앙선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중앙선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다. 중앙선은 곧 금지다. 하지만 엘리는 그 선을 넘어 애스터에게 자기 마음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전달한다. 엘리가 자기 욕망을 솔직히 고백하면 이성애 결혼이 망쳐지고, 중앙선을 넘는다. 경유되고 굴절되지 않은 레즈비언 욕망은 이처럼 '위험'하고, '파괴적'이다.


엘리가 다른 여자를 직접 욕망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선을 넘고 분위기를 망칠 것이다. 헐거운 이음새의 틴에이지 무비인 이 영화가 매력적인 건, 규범을 위반하는 퀴어 욕망을 따뜻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엘리는 따돌림당하고 친구도 별로 없는 아시아계 이주자 레즈비언일 뿐이지만, 다른 모든 이성애자가 재미없게 살아가는 동안 홀로 경계를 넘어 '혼란'을 만든다. 엘리가 더 많은 여자들을 욕망하며 사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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