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1편 Paris-06)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Paris



6.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


Paris에 체류하던 시절에는 왜로상트르(Eurocentre)라는 학원과 소르본느(Sorbonne) 대학 어학 과정에서 불어를 배웠다. 그런데 왜로상트르에서 학습했던 기간이 훨씬 더 길었고 따라서 그만큼 그곳에서의 추억이 더 많다.


(왜로상트르, 링크 하단에 학원 모습 사진이 있음)

https://www.eurocentres.com/ko/language-school-paris


그런데 사실 왜로상트르 학생들은 모두가 불어를 배우려고 다양한 외국에서 온 이방인들로 어차피 현지 언어인 불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고국을 떠나 Paris라는 생소한 객지에 와서 아는 사람도 없는 외로운 신세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업이 끝나면 우리들끼리 이따금 학원 바로 앞에 있던 튀니지(Tunisie) 사람이 운영하는 맥주 집에서 함께 한잔하면서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었다. 학원 수업이 통상 3~4시경이면 종료되었으므로 그야말로 당시 우리들 모두 Paris에서의 낮술을 자주 즐기곤 했던 셈이다.


사진) 어학원 인근 맥주집에서 같은 반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속의 친구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국적은 기억나는데, 독일, 스위스, 아르헨티나였다. 사진 좌측 안경 쓴 동양인이 나인데 1995년의 가을에 찍은 사진이니 벌써 30년이 다 돼가는 매우 오래된 과거 사진이 되어버렸다.


맥주 집에서 술 한잔 할 때는 좀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대화하게 되다 보니 당연히 수업시간에 얘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솔직한 얘기들이 오고 가곤 했다. 그런데 국가별로 문화나 교육 환경, 성장 과정 등이 크게 달랐던 만큼 대화를 하다 보면 한 가지 동일한 현상에 대해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너무나 의외의 의견들이 나오기도 해서 꽤 놀랐던 경우도 매우 많았다.


하루는 마침 그날이 동성애자들이 Paris 시내 거리로 나와 대대적으로 행진을 하던 날이라 자연스럽게 술자리에서의 화제가 동성애로 옮겨 가게 되었다. 그날의 행진은 아래의 최근 링크 사진을 봐도 느낄 수 있지만 정말 매우 큰 대규모 행진이어서 내가 Paris에 체류하던 기간 반정부 시위대의 행진을 포함해도 이렇게 큰 규모의 행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런 엄청난 분위기에 좀 당황하기도 했고 또 약간 취기도 있었던 나는 화제가 동성애로 옮겨지자, 한국에서 말했던 그대로 동성애나 동성애자를 몹시 폄하하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고 더 나아가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기도 했었다.


(Paris의 동성애 행진)

https://www.parisunlocked.com/paris-by-season/summer-in-paris/how-to-enjoy-paris-gay-pride-marche-des-fiertes-lgbt/


그런데 한참 그렇게 열심히 열변을 토하고 있던 중에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잠시 말을 멈추고 친구들 분위기를 살펴보니, 같이 맥주 마시던 5~6명의 유럽인 백인 학생들 거의 전부가 나를 꽤 이상한 사람 쳐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친구들 말은 요약하면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거나, 네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한 것도 아니며, 또 너에게 아무런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너의 부정적 판단만이 옳다고 주장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이 무슨 약을 먹어야만 치료가 되는 질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선택과는 전혀 관련 없이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견이 생기면 통상 문화 차이나 개인 의견에 따라 몇 명씩 편이 갈라지곤 했는데, 이번 건은 어찌 된 일인지 오로지 나 홀로 한 편이고, 나머지는 모두가 다른 편이었다.


수업시간 중 선생이 거리에서 마주치는 걸인의 구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돈 절대 안 준다고 나는 답을 했는데 10명 정도의 학생 중 나와 똑같은 답을 한 학생이 2명 더 있었다. 바로 일본 학생 2명이었다. 나머지 7명 정도의 유럽이나 중남미 학생들은 돈을 준다고 답을 하거나 아니면 상황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답을 했다. 절대로 안 준다고 확고한 소신으로 딱 잘라 말한 사람은 딱 3명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3명이 그 반에 있던 한국인과 일본인 전원이었던 것이다.


아마 이날도 그 일본 학생들이 그 술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나 혼자 외톨이가 되지 않고 나와 비슷했거나 아니면 나와 같은 의견을 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날 그 술자리에는 일본 학생은 두 명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어쨌든 다른 분야도 그런 경우가 매우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유럽 사회와 유럽인의 시각도 당시의 한국과 한국인의 시각과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날 또 새삼 깨우쳤다.


물론 요즘은 한국 사회도 동성애와 같은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시각이 전과는 꽤 달라졌다고 들어서 아마도 이제 유럽인의 사고와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모든 유럽인의 생각이 같을 수는 당연히 없을 것이고, 유럽인 중에서도 그날의 내 친구들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그 '1대 나머지 전부'라는 완전히 일방적인 토론을 통해서 얻었던 것은 동성애에 대한 유럽인의 인식 그 자체보다는, 꽤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외국인들에게 의견이나 주장을 전달할 때는 좀 더 신중하고 다각적으로 생각을 한 후에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꽤 단순한 사례지만 연장자에 대한 존칭 사용처럼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진리가 유럽에서는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그날 그 토론을 통해 나와는 다른 그룹이나 방식에 속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같은 인간으로서, 성소수자들의 권리와 인권도 중요하고 지켜져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생물학적으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상태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정신적으로 성 정체성 혼동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한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어쩔 수 없이 태어난 그대로의 삶을 산다는 것 그 자체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우쳤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성애를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문화나 제도가 만연해져서 원래 동성애자가 아니었던 사람까지도 후천적 동성애자로 만들어가는 경우는 피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이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왜로상트르 같은 반에 나와는 꽤나 친했던 Stephan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당시 20대 초반의 스위스인이었는데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번은 자신은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바(Bar)에 가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고 앞으로도 다시 할 수도 있다고 너무도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서빙하고 말 상대만 좀 해주면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팁도 두둑이 주고 해서 거기서 일했는데, 자신은 그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동성애를 즐기기 위해 그곳에 갔던 것이 아니고, 그저 일을 하는 직장 개념으로 갔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친구 말 그대로 당시 그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한 것 같았다. 하지만 프랑스를 떠나서 한국에 돌아온 이후 그 친구로부터 보고 싶다고 계속 연락이 왔을 때, 왠지 뭔가가 좀 불편해 답을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이후로는 연락이 끊어졌다.


물론 단지 친구로서 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자가 모이는 곳에 자주 다니다 보면 혹 자신도 모르게 그런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그 친구도 이후 천천히 후천적인 동성애자가 되어갔던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동성애자는 그 후에도 여러 곳에서 다시 만난 적이 있었다. 모두가 해외 법인에서 근무할 때 같은 법인 내에 근무하던 외국인 직원들이었다. 캐나다 법인에도 또 홍콩 법인에도 자타가 공인하는 동성애자가 있었는데,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동성애자는 대체로 행동이나 외관에서 뭔가 좀 색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법인의 거의 모든 직원들은 그러한 색다름이 있는 그들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편하게 지내는 직원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유독 내 경우는 전혀 아무런 부담 없이 그들과 대화하기는 좀 어려웠었던 기억이 있다.




어찌 보면 꽤 재미있는 현상인데 동성애의 경우와는 정반대 상황으로 우리 관념으로는 다소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Paris에서 경험했다.


연인 관계도 전혀 아닌 젊은 두 남녀가 한 아파트에 아무런 부담 없이 단둘이 사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학원의 독일 친구 경우였는데 수업이 끝나고 그 친구 아파트에 놀러 가 보니 어파트 안에 왠 젊은 여자가 있어 꽤 당황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룸메이트로 방이 두 개 있는 아파트를 나누어 사용하는 관계일 뿐으로 연인도 전혀 아니며 완전한 남남이라는 것이었다.


남자끼리 또는 여자끼리 한 아파트에서 같이 사는 경우에는 동성애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오히려 이성끼리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설명이었는데, 196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살다 Paris로 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당시 꽤 신기한 일로 보였다.


다양한 인간의 얼굴만큼 하늘 아래의 이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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