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영국/일본이 다른 점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1편 Paris-07)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Paris



7. 독일과 영국/일본이 다른 점


얼마 전 한국에 와서 방송생활을 하는 한 호주인이 한국인 코미디언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방송에서 흑인 흉내 내는 것을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하면서 꽤 한심하고 창피하다고 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당사자에게만 연락해서 조용히 지적을 한 것도 아니고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지적을 해서 결국 언론에까지도 기사화되었고 이후 그는 매장되다시피 돼서 요즘은 방송에서 보기도 어렵게 되었다.


사실 Paris에서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백인들로부터 인종차별을 직접 당해본 경험이 있는 나 역시 그 호주인의 지적이 상당 부분 옳다는 것은 분명히 인정한다. 그럼에도 그 지적이 진정으로 마음에 와닿지 않고, 좀 불쾌하게까지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또 솔직한 심정이다.


그 호주인은 공개적으로 동료 연예인을 지적하고 한국인을 가르치려 하기 전에 먼저 인종차별로 너무도 유명한 자신의 고국 호주의 문제부터 신랄하게 지적하고 반성해야 하지 않았을지....


물론 그 호주인 한 명에게 호주를 대표해서 호주인의 모든 과거 및 현재 인종차별 문제를 책임지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호주의 인종차별 역사와 현실을 인지한다면 적어도 좀 더 겸손한 방법으로 한국인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택해야 했을 것이란 얘기다.


예를 들어 한국에 와서 방송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일본인이 일본의 과거 역사, 즉, 식민지배, 위안부, 학살 및 현재 일본 내에서 자행되는 한국인과 후진국 출신 외국인에 대한 심한 차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 없이, 한국인이 한국 내 외국인 근로자를 너무나 차별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비난하며, 한심하고 창피하다고 한다면 과연 일본인의 그러한 지적이 한국인들 마음에 진정으로 와닿고 또 한국인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호주에 도착한 영국인들이 호주 원주민을 대상으로 자행한 과거의 인종말살적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 그 후 최근까지 백호주의(白濠主義) 사상에 심취해 호주 땅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과, 한국인 포함 백인이 아닌 모든 외국인 이민자를 철저히 차별하고, 고통 주고, 심지어 증오로 인한 살인까지 했던 호주라는 나라에서 온 백인이 한국에까지 와서 모든 한국인 가르치듯이 공개적으로 한국인의 인종차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정말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한국 여대성 호주서 피살)

https://m.news.naver.com/read.nhn?oid=052&aid=0000488167&sid1=104&mode=LSD

(호주 호텔 투숙 거부된 한국 의사)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5&aid=0001227478

(호주에서의 한국인 피해 사례들)

http://www.vop.co.kr/A00000567790.html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영국은 프랑스나 스페인과 공통점이 있다. 호주도 그러한 영국의 식민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유독 영국 식민지만이 갖고 있는 한 가지 특징적 차이가 있는데 바로 원주민이 멸절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결코 올바른 표현은 아니지만 백인들이 원주민을 지칭할 때 사용하던 인디오(Indio)와 인디언(Indian)은 같은 말이다 영어의 Indian을 스페인어로 표현하면 Indio이다. 그런데 스페인이 식민 지배했던 중남미에는 혼혈 형태로나마 원래 그 땅의 주인인 Indio가 남아 있는 경우가 꽤 많고 심지어 순수 Indio 혈통이 국가의 주력 인종으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페루, 볼리비아 같은 국가도 있다.


반면, 영국인이 거주를 위해 이주했던 북미나 호주를 보면, 영국인의 이주 이후 원래 그곳에 살던 Indian 등 원주민은 멸절되다시피 되어 버렸다, 혼혈로서 남아 있는 경우조차도 거의 없다. 아무리 적어도 수천만으로 추산되던 북미 대륙 원주민은 거의 다 사라졌고, 이제 남은 인구는 불과 몇 백만 명 밖에 되지 않는다. 수백만의 원주민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호주 대륙에서도, 영국계 백인 인구는 급증해왔던 반면 원주민 인구는 몇 십만대로 줄었다. 미국이나 호주로 여행 가서 원주민을 만나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원주민에 대한 차별뿐 아니다, 호주의 영국인들은 한발 더 나아가, 원래 그 땅에 살던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또 쫓아낸 이후에는 이제 자신들이 주인 행세를 하면서, 백인이 아닌 인종은 이민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백호주의(白濠主義)' 같은 정책까지도 펼쳐 왔다, 원주민뿐 아니라 새로 유입되는 이민자까지도 피부색으로 차별했던 것인데, 과거 한때 인종 차별로 역시 악명을 떨쳤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테이트(Apartheid)와 쌍벽을 이루는 유례가 드문 국가적 차원의 인종 차별 정책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호주의 백호주의)

https://namu.wiki/w/%EB%B0%B1%ED%98%B8%EC%A3%BC%EC%9D%98

(남아공의 아파르테이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2/0000038533?sid=104


호주에 온 영국인들의 원주민 학살은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 수준이었다. 지금도 인터넷에 "호주, 원주민, 학살"이라는 문구로 검색하면 너무나도 소름 끼치는 그 끔찍한 역사가 허다하게 쏟아져 나온다.


(백인들의 호주 원주민 학살)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9388738?sid=104


특히 호주 태즈메이니아섬(Tasmania)에서는 영국인들이 엄연한 인간인 원주민을 마치 짐승 사냥하듯 학살하여 그 섬에 거주하던 원주민 전원이 지구 상에서 완전히, 영원히 사라진 참혹한 사례도 있다.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전원 절멸)

https://m.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644432753


독일의 수백만 유대인 학살을 비난하는 영국인이, 자신들이 자행한 수천만의 북미 원주민 그리고 수백만의 호주 원주민 학살 사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반성하고 독일처럼 그 악한 역사를 후세에 교육시키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과거 역사에 대해 진지한 반성과는 너무 거리가 먼 태도를 지속해서 견지하는 또 다른 국가가 일본이라는 것을 보면 두 나라는 모두 같은 섬나라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유사한 점 또한 매우 많은 것 같다. 철저하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교육하는 독일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인 것이다.


물론 특정 국가 사람 전체를 일반화시켜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국, 호주, 일본에도 역시 자신들의 죄악의 역사를 반성하는 개인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이나 일본 및 호주에는 독일과 같은 반복적이고 집요한 국가 차원에서의 교육이나 반성은 분명히 없다는 것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 역시 잘못을 잘못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는 미숙한 가치관을 가졌던 과거가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어릴 적 봤던 미국 드라마 카스터(George Armstrong Custer) 장군 관련 얘기다.


포장마차를 타고 서부를 횡단하는 백인 이주민들이 원주민 공격을 받으면 미국 기병대의 카스터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멋지게 나타나 인디언들을 모두 사살하고 백인들을 구하는 그런 내용의 드라마였는데, 위기의 순간 적시에 등장하는 카스터 장군이 인디언들을 죽이고 쫓아내며 백인을 구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손뼉 치고 환호했던 기억이 있다.


(카스터 장군 영화)

https://m.blog.naver.com/sjt02/221906115585


그런데 사실 그러한 상황은, 일본군 장군이 한국에 침략해 들어와 저항하는 독립군을 학살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들의 과거 학살 역사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일부 미국인들이 그들의 입장에서 제작한 드라마를 보다 보니 나 역시 그런 왜곡된 관점에 세뇌된 결과였던 것이다.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교육은 너무도 철저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할 수 있었다. 학원 같은 반에 있던 한 10대 독일 학생이 수업 중 발표시간에, 2차 대전 기간 발생한 유태인 학살 등 독일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는 말을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민족이 아니라 사람 각 개인"이라고 강조해서 말하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평소 좀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여서 별로 가깝게 지내지 않던 친구였는데 독일의 과거 역사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만큼은 너무도 확고했던 것이다.


학원의 프랑스인 여자 선생이 유독 그 친구한테는 쌀쌀하게 대했던 것 같은데, 그 친구는 그것까지도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이 프랑스에서 자행한 나쁜 짓들이 너무 많아서, 프랑스인들은 자신과 같은 독일인에게 아직도 당연히 그러한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친절하게 부연 설명까지 해줬다.


20살도 안된 10대의 어린 독일 학생이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들에 대해, 그렇게 처절하게 반성할 정도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과거의 잘못에 대해 너무도 무감각하고 또 배운 것도 전혀 없는 영국이나 호주, 일본 학생들의 모습과 비교해볼 때는 좀 신기하고 이상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프랑스군과 미군이 연달아 주둔했던 베트남에는, 두 군대 간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한다. 프랑스 군인 미국 군인 모두 베트남인의 증오의 대상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군대 간 한 가지 뚜렷한 차이가 있다면, 프랑스 군인들과는 여기저기서 만나서 서로 싸우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하는데, 미군은 애당초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기본적으로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즉 미군은 자신들만의 술집 등 미군만의 공간이 따로 있어, 베트남 사람과 미군이 조우하고 섞일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같은 백인들이었지만 그만큼 영국계 앵글로색슨이 주류가 되는 미국인과 유럽 대륙의 프랑스인은 그 기질에서 차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인 것 같다.




영국계의 앵글로색슨이 얼마나 인종적이고 배타적인지는 같은 백인계 미국인이라도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라는 3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지 못하면, 미국의 주류 사회에는 좀처럼 진입할 수 없다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는 단어가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통용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흔히 인종을 단 두 가지로만 구분한다, 백인과 유색인종(Colored People). 즉, 동양인이든, 아랍인이든, 흑인이든, 원주민이든, 혼혈이든, 그들의 인구수가 얼마나 되는지와 전혀 관계없이 이 지구 상에서 백인이 아닌 모든 인종은 단 하나의 단어 "Colored People"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를 미국에서는 자주 흑인이라고 하고 우리도 종종 그렇게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바마는 아버지가 흑인일 뿐이고 어머니는 백인이다. 즉, 엄밀히 말하면 혼혈이라고 표현해야 하며 흑인이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오바마의 백인 어머니)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080412/8566539/1


그럼에도 백인이 아니면 제대로 구분을 하지 않고 몽땅 한 단어로 싸잡아 부르는 유색 인종이라는 표현이 만연하다 보니, 북미에서 그는 혼혈인도 아니고 그냥 유색 인종 또는 흑인으로 불릴 뿐이고, 우리도 때로는 그런 잘못된 표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Colored People', 다시 말해서 '색이 들어간 인종'이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 흔하게 자주 접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지독히도 왜곡된 사고의 결과로 탄생된 단어인 것 같다. 백인 이외에는 전혀 구분할 필요도 없이 다 똑같다는 인식에서 이런 단어가 만들어진 셈인데, 반대로 흑인들이 아랍인, 동양인, 백인, 혼혈 모두 관계없이 흑인을 제외한 전인종을 지칭하는 말로 어느 날 갑자기 "색이 좀 덜 들어간 인종"이라는 의미의 'Less Colored People'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 사용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면 '유색 인종' 즉 'Colored People'이라는 표현이 정말 얼마나 괴이하고 우습기까지 한 표현인지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인들을 보고 '영국 신사'라고 하는 표현이나, 일본인은 예의 바르다고 언급하는 것은, 영국이나 일본 영화를 너무 많이 봤던가, 아니면 역사적 현실에 대해 전혀 무지하거나 무감각하기 때문일 뿐이다.


물론 분명 그런 영국인이나 일본인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편화시켜 그 나라 국적이면 모두가 그런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당연히 말이 안 된다. 영국이 북미와 호주에서 원주민 대상 어떤 행동을 했고, 일본이 중국, 한국, 동남아에서 2차 대전 당시 또는 그 이전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다면 결코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서울에서 거주하는 곳은 이촌동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이곳에 살았는데 언제부턴가 이 동네에 일본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인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아침에 출근할 때 한국인들은 대부분 버스 안에서 졸던가 이어폰으로 뭔가를 듣던가 하는 반면에, 무슨 힘이 그렇게 넘쳐 나는지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일본에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일본인을 거의 매일 접하면서, 모든 일본인들이 항상 조용하고 예의 바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내가 거주하는 금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일본어 문구 (2015년 10월). 왜 일본어로 적혀 있냐고 경비실에 문의했더니, 아파트에 일본인이 몇 가구 사는데,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뿐 아니라, 담배꽁초를 고층에서 창 밖으로 던지기도 해서 일본어로 적어 놓았다고 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기자 카메라를 훔치는 장면이 고스란히 CCTV에 녹화돼 벌금을 선고받은 도둑도 일본인으로 아시안게임에 선수로 참가했던 일본 대표 수영 선수였다. 예의 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도둑질까지도 하는 일본인도 있는 것이다.


(한국 기자 카메라 훔친 일본 국가 대표)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312/0000048407


일본을 미워하고 일본을 싸잡아서 비난하자는 그런 주장이 결코 아니다. 예의 바르고 규범을 잘 지키는 일본인이 있는 반면, 아닌 일본인도 많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영국에 신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영국인이 신사는 아니며 영국인 중에서 신사는 그 비율에서 오히려 다른 국가들보다 낮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학원의 독일 친구들에게 너희 독일인은 2차 대전 때 일본과 동맹이었고, 전후 빠른 경제부흥을 통해 다시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것 등 일본과 흡사한 점이 정말 많은 것 같다고 하면 대부분의 독일 친구들은 다소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다.


일본이 경제 대국인 점, 일본인이 통상 매우 친절해 보이는 점, 그리고 1995년 당시 이미 일본의 미술 등 일본 문화가 유럽 대륙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적지 않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던 점 등을 고려하면 결코 기분 나쁜 말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왠지 일본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꽤 큰 거부감을 가진 독일인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 학생과 잘 어울리는 독일 학생은 별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자신들의 부모 세대나 그 이전 세대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대해 그들이 받아왔던 교육이 두 국가 간 너무도 달랐던 것도 이러한 현상의 한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호주의 과거 원주민 학살 역사, 그리고 그 역사에 이어지는 호주의 인종차별은 꽤 잘 알려져 있다. 그런 호주에서 온 한 호주인이 악명 높은 호주인의 인종차별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국인의 인종차별을 굳이 지적해야 했다면 그렇게 언론에 노출되게 공개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보다 겸허한 자세로 그 한국인 코미디언에게 직접 연락해서 설득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일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철저히 교육시키는 것처럼, 호주 정부도 자국민을 대상으로 과거 호주 백인들이 원주민에게 저질렀던 끔찍한 만행의 역사 그리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호주의 인종차별에 대해 좀 더 충실하게 교육시켰다면, 그 호주인처럼 호주인들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한국인들 눈의 티끌은 너무나도 떳떳하게 지적하는 그러한 용감성을 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활개 치고 있는 호주의 인종차별주의자들도 한국의 그 젊은 코미디언처럼 단 한번 실수로 호주에서 사회적으로 영원히 매장당하고 있는지 그 호주인에게 한번 묻고 싶다.

keyword
팔로워 270
이전 06화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