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연수 프로그램에는 차량 지원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내 경우는 프랑스 최대 자동차 업체인 르노(Renault)에서 차를 리스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차량 리스가 아직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리스는 비용만 지불하면 차량등록, 보험 등 차와 관련되는 거의 모든 것이 미리 다 처리된 상태로 차량을 인도받는 방식이어서, 언어나 현지 관습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나와 같은 외국인에게는 매우 편리한 제도였던 것 같다.
한편 프랑스 차는 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독일 바로 옆에 인접한 국가임에도 프랑스 차는 독일 차보다는 일반적으로 좀 작았다. 그런데 내가 리스했던 '르노 19'라는 보급형의 차는그중에서도 유독 더 작은 차였는데 그렇게 차가 작다 보니 오히려 나처럼 차 운전 경력이 길지 않고 또 프랑스의 도로 사정에도 밝지 않은 외국인이 운전하기에는 훨씬 더 좋았던 것 같았다. 또 서울보다는 도로가 좁은 Paris 시내 주행에도 이처럼 작은 차가 보다 적합했던 것 같기도했다.
사진) 프랑스에서 1년간 리스했던 Renault 19. 1990년대 말 단종되어 이제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한다. 바로 이 귀엽고 작은 차를 타고 Paris 및 프랑스 전역 또 독일까지도 돌아다녔다.
프랑스 경우는 차량 도난사고가 한국보다 빈번해서 그런지, 자동차 도난 시에 대한 보험도 차 리스에 포함돼 있었는데 차량 도난 사고가 발생하면 새 차를 다시 리스해 주는 그런 조건이었다. 즉 차가 통째로 도난돼도 일정 절차만 거치면 같은 차종의 새 차를 다시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어느 날 Paris 샤를르 드골 공항에 가서 공항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볼 일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차가 없어졌다. 혹시나 주차 위치를 잘 못 기억했나 싶어 옆자리 뒷자리 포함, 그 층 전체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내 차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차량 도난사고를 나도 마침내 직접 당하게 되는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불쑥 들었고 당연히 눈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보험 조건상 추가 비용 없이 새 차를 다시 받을 수는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차량 도난 신고부터 시작해서 밟아야 하는 서류 절차가 엄청나게 많을 것이고, 방문해야 하는 기관들과 또 만나서 상황을 설명해야만 하는 사람도 꽤 많았을것이다. 그런데 당시는 아직 현지 언어인 불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던 시절이었으니 그처럼 많은 절차를 혼자서, 그것도 불어로 처리할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정말 더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겠다는 심정으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차장 다른 층에도 가 보았다. 그런데 바로 위층에 가보니 내차 르노 19가 그간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아무런 문제도 없이 버젓이 주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차를 주차해 놓은 곳의 위치 번호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층수를 잘 못 기억하고 엉뚱한 층에 가서 그렇게 오랜 시간 쓸데없는 걱정으로 허둥지둥 마음 졸이며 헤맸던 것이었다.
좀 허탈하기도 했고, 나 자신이 한심하고 우스운 생각까지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날 완전히 도난된 것으로 간주했던 차를 다시 보게 되니 죽었다 다시 살아난 것처럼 너무나도 반가웠던기억이 있다.
프랑스에서의 운전은 한국과는 좀 달랐다. 물론 고속도로 같은 곳에서의 운전이야 별 차이가 없었지만, Paris 시내와 같은 곳에서는 다른 점이 많았다.
우선 도로가 매우 좁아서 그런지 일방통행 도로가 많아 잘 못 진입하면 1차선 도로에서 마주오는차를 만나 한참을 후진해서 되돌아와야 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또 Paris에서는 주차할 때 도로변에 평행주차를 해야 하는 곳이 많았는데, 그런 식으로 주차해본 경험이 많지 않았던 내게는 이미 주차된 차들의 좁은 공간 사이로 내 차를 밀어 넣어 주차하는 것도 한동안 꽤 어려운 숙제 중 하나였다.
불어로 롱뿌엥(Rond-Point)이라는 원형교차로가 많은 것도 한국과는 달랐는데, 롱뿌엥 지역에서의 교통법규도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한편 Paris의 롱뿌엥 중에는 한국인 유학생들 사이에 매우 유명한 곳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개선문이었다. 차를 사면 실제 면허와 관계없이 바로 이 개선문 원형교차로에서 운전 능력을 다시 검증받곤 했는데, 그 이유는 이 개선문이 무려 12개 차선이 서로 교차되는 Paris 시내 최대 롱뿌엥이었기 때문이었다.
12개 차선이 교차되는 이 원형교차로 안으로 차를 운전해 들어가는 것은 쉬워도 원하는 길로 빠져나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원형교차로 안에서 좌우 측 차를 피해 원하는 길로 나와야 하는데, 교차로 내에 워낙에 많은 차들이 돌고 있고 또 빠져나와야 하는 길도 무려 12개나 되기에, 운전이 서툴면 나올 길로 진입하지 못하고끊임없이 개선문 주변의 원형교차로를 뺑뺑 돌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이 개선문의 교차로를 문제없이 헤쳐 나가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Paris의 운전자로 인정받는 그런 관행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나 역시도 Paris에 도착해서 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유학 중인 대학교 동창을 옆 자리에 모시고(?) 코치를 받아가며 통과를 시도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단 한 번에 원하는 길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또 다른 차이점은 Paris에서는 한국과는 다르게 차량이나 신호등보다 보행자를 우선하는 개념이 꽤 강했다. 인도를 걷다가 무심코 차도 쪽 가까이 가서 가만히 서 있으면, 그 앞 도로를 주행하던 운전자들은 내가 차도를 건너려는 것으로 인식하고 정차하는 경우를 너무도 자주 경험했다.
사람이 차도를 건너려는 행동을 차량 주행이나 신호등보다 우선한다는 그러한 인식에서 나온 모습이었는데, 1995년 당시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어서 꽤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있다.
이러한 관행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내 다른 국가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는데 그런 관습 속에서 잠시나마 살아서인지 이후 어쩌다 서울의 골목길을 걸을 때 뒤에서 오던 차량이 행인에게 비키라고 경적을 울리는 경우를 보거나 내가 직접 당하면 순간적으로 놀라거나 불쑥 화가 나기도 했다. 물론 요즘은 한국에서도 이런 경우가 점점 줄어들어 많이 좋아진 것 같기는 하다.
사람 우선 인식이 이처럼 뿌리 깊은 프랑스에서 신호등에 애매하게 걸려 사람들이 건너가는 횡단보도 중간에 내 차가 정차하게 된 경우가 있었다. 차가 그렇게 횡단보도 중간에 걸쳐있다 보니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행인들이 내 차를 피해 돌아서 건너야만 하게 된 상황이었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들 거의 모두 예외 없이 한 마디 하고 가거나 욕을 하며 지나갔다. 심지어 손으로 차를 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울에서 같은 경우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별다른 불만의 표현 없이 그저 차를 돌아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상황과는 너무도 달라 꽤 당황했는데, 횡단보도를 막고 있는 내 차를 빼려 해도 내 차 앞 뒤로 다른 차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계속 그렇게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명백히 내가 잘못한 경우이니 뭐라 할 말도 없었다.
2005년~2006년 중국 베이징에서 근무하던 시절 아침에 1시간 정도 걸어서 회사로 출근했었다. 걸어가는 과정에 큰 차도를 3~4개 정도 건너야 했는데, 그때 그 유명한 '중국식 길 건너기(中国式过马路)'를 매일 목격했었고, 나도 그들 따라 실제 그렇게 차도를 건너기도 했었다.
중국식 길 건너기란, 어찌 보면 13억에 달하는 중국 인구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은 매우 특이하고 재미있는 방식의 길 건너기인데, 길을 건너려는 여러 사람들 중 한두 명이 먼저 조금씩 도로 중앙으로 슬금슬금 걸어 나오면,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조금씩 앞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결국은 이렇게 해서 사람이 차도를 완전히 막아 길을 건너는 그런 방식이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베이징 대부분의 도로는 신호등 관계없이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건너갔는데, 따지고 보면 중국의 이러한 방식도, 프랑스나 유럽의 보행자 우선 개념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러한 길 건너기 방식이 후진적이고 문제가 있는 방식으로 비판받았고 정부에서도 그러한 관행 개선을 위해 벌금까지 강화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그러한 방식이 전혀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고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큰 차이가 있었다.
Paris와 베이징을 함께 경험했던 내 입장에서 볼 때, 어찌 보면 뭔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보행자 우선이라는 개념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중국에서는 그것이 문제로 간주되고 프랑스에서는 전혀 문제가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지금도 그 이유가 잘 판단이 안 된다.
대학 선배의 무용담 중, Paris의 뻬리페릭(Périphérique, 서울의 외곽순환도로와 유사)을 역주행으로 운전한 전설 같은 얘기도 있었다. 그것도 술에 취해 그렇게 순환도로를역주행했다는데, 다행히 사고도 없었고 경찰에 적발되지도 않았다지만, 너무도 미련하고 위험한 일로 정말 두 번 다시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일이었던 것 같다.
음주 운전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도 이 뻬리페릭에서 운전 중 큰 일을 경험했었는데 바로 프랑스에서는 처음이자 또 마지막이었던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비가 조금씩 오는 날이었는데, 역시 빗길은 위험했다. 한참 주행 중이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앞차가 급정차를 했고 나도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빗길이라 그랬는지, 옆자리에 앉아있던 유학생 동창의 '어~어~어~어~어' 하는 비명과 함께 내 차는 앞차 뒤 범퍼를 살짝 받은 후 멈추어 서게 되었다.
바로 이어서 내 뒤에 오던 차도 급정거에 성공하지 못하고 내 차를 받았고, 그 뒤의 차가 또 그 차를 받고 해서 결국 총 5~6대 차량이 추돌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차에서 내려 보니 차량 운전자 모두가 나와서 차의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있었는데 다행히 누구도 다친 사람은 없었고, 사고 정도도 앞뒤 차간 범퍼를 받아서 조금씩 긁히거나 찌그러진 정도로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접촉 사고가 발생했으니 보험 처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프랑스에 거주한 지 꽤 오래되는 유학생 동창 말이, 프랑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앞뒤 차간 추돌이 발생했을 때는 뒤차의 안전거리 미확보에 가장 큰 귀책이 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내 차를 받은 프랑스 백인 운전자는 내게 다가오더니 평소에 접해보던 프랑스 백인과는 너무도 다르게 매우 공손한 표정으로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또 내 국적을 듣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친구 중에는 너무 친한 한국인도 있다는 사고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말까지 건네 오기도 했다.
당시 Paris에서는 한국에서만큼 자가용을 그렇게 깨끗하게 관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매우 비싼 고급차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따라서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그저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가치를 차에 두지 않는 것 같았고 그러다 보니 길거리 비좁은 공간에 주차할 때 앞뒤 차 범퍼와 부딪쳐도 별로 개의치 않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내 앞 차와의 추돌은 뒤에서 차를 받은 내게 귀책사유가 있었으니 내 뒤 차 운전자처럼 나 역시도 나름 마음을 졸이면서 내 앞 차 운전자를 찾아갔다. 그런데 차에 대한 그런 보편적 인식이 있어서인지 어느 노부부가 차에서 나와서 잠시 범퍼를 내려다보고는내 뒤차의 운전자와 내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별다른 말도 없이 그냥 가 버렸다. 뭐 어차피 그 정도로 긁히는 접촉은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니 신경 쓰기조차 귀찮다는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내 차가 다중 추돌사고 최초 추돌 차량이었음에도, 어쨌든 그렇게 그날 Paris에서의 교통사고는 내게 아무런 귀책도 없이 마무리되었는데, 그때 Paris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경험했던 백인 프랑스인의 너무도 공손한 표정과 말투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 차를 받아서 아쉬운 처지에 있던 그 프랑스인의 태도나 자세가 그만큼 너무도생소했다는 얘기인데, 아마도 내가 프랑스에 거주하는 1년간 돈 주고 물건 사는 경우가 아닌 상황에서 만났던 프랑스인들 중에는 그 프랑스인이 가장 친절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