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 다른 접근법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1편 Paris-09)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Paris



9. 다른 세계, 다른 접근법


프랑스에 살다 보니 동일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한국과는 많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떨어져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 보니 그렇게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생긴 것 같았다.




프랑스에서는 1층을 헤드쇼쎄(Rez-de-chaussée)라고 말한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거리의 길과 같은 층'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한국의 2층을 프랑스에서는 1층이라고 했다. 따라서 술 한잔하고 좀 취기가 있는 상태에서 호텔의 1층 로비에 간다고 엘리베이터의 '1'이라고 쓰인 버튼을 누르게 되면, 엘리베이터는 어김없이 2층에서 문이 열려서 어리둥절하게 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하게 된다. 한국의 개념으로 1층 가고자 할 때는, 1이란 버튼이 아니라 RC, 즉 Rez-de-chaussée라고 쓰여 있는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법은 프랑스에서 뿐 아니라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한국에서의 2층을 1층으로 부르고, 실제 1층을 지칭하는 말로는 Ground Floor(영어, 평지 층), Planta Baja(스페인어, 낮은 층)등 나라별로 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1층이라고는 표현하지 않았다.


유럽인은 단층집 위에 1개 층이 추가로 올려지면 그것부터 1개 층으로 인식하는 개념이고, 우리는 단층집 그 자체를 이미 1개 층으로 이해하는 그러한 차이가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영국인 등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국가인 미국에서는 정작 유럽에서처럼 Ground Floor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한국에서처럼 1층을 1st Floor라 표현하니 나름재미있는 현상인 것 같다.


홍콩 근무할 때, 시내 건물 곳곳에 LG라는 단어가 부착되어 있고, 심지어 엘리베이터 버튼에도 LG로 적힌 버튼이 다수 있어 "한국의 대기업 LG가 홍콩 여기저기에 참 많이 진출해 있구나"라고 한동안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알고 보니, 여기에서 말하는 LG는 "Lower Ground"라는 단어 약자로 지하 또는 Ground Floor 바로 아래층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영국 지배를 오래 받아 그런 영국식 표현이 홍콩에 남아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한국의 기업체인 LG의 사무실이 홍콩 도처에 있는 것으로 황당한 오해를 했던 것이다.


(홍콩의 층수 표기법)

https://hkexpress.tistory.com/22




프랑스에서는 물건을 구입하고 난 후 잔돈을 거슬러 줄 때 한국에서의 방식과는 완전히 반대 방식으로 거슬러 준다. 예를 들어, 우리는 100원 지불하고 57원짜리 물건을 사서 43원 거슬러 줘야 할 때는 40원 주고 3원을 준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반대로 3원을 먼저 주고 그다음에 40원을 준다.


이런 경우 잔돈 단위가 두 단위면 그나마 좀 덜 헷갈리는데, 그 단위가 100 단위, 1,000 단위로 올라가면 잔돈 받을 때 그렇게 역순으로 받는 것이 정말 매우 혼란스럽다. 아마도 어릴 때 학교에서 산수 배울 때부터 프랑스에서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계산을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유럽에서의 잔돈 계산법, 링크 끝부분 참조)

https://birke.tistory.com/entry/%EC%97%AC%EB%8D%9F%EA%B0%9C%EB%82%98-%EB%90%98%EB%8A%94-%EC%9C%A0%EB%A1%9C%ED%99%94%EC%9D%98-%EB%8F%99%EC%A0%84-%EA%B1%B0%EA%BE%B8%EB%A1%9C-%EC%85%88%ED%95%98%EB%8A%94-%EA%B2%8C-%EB%8D%94-%ED%8E%B8%ED%95%A0%EA%B9%8C




잔돈 계산뿐 아니다. 주소도 우리와는 전혀 반대 방식으로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00번지" 이렇게 큰 단위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작은 단위로 말하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00번지 서교동 마포구 서울" 이렇게 가장 작은 것부터 말한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갈 때도 이런 식으로 기사에게 말을 해 줘야 했는데, 이처럼 작은 것부터 말하는 방식은 이후에 주재 근무했던 캐나다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개념으로는 당연히 큰 그림부터 윤곽을 잡고 점점 좁혀가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를 것 같은데, 서구 사람들은 그 역순으로 개념을 잡아가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는 것 같은데 그런 차이가 참 신기하기도 했다. 잔돈 계산법처럼, 역시 어린 시절 학교에서 교육받을 때부터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영어 주소 표기법)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peakingmax&logNo=130120765031




프랑스에서만 사용하는 정말 황당한 숫자 표기법도 있다. 70 이상의 숫자들인데, 불어로 70은 soixante-dix, 즉 60 + 10이라 말하고, 80은 quatre-vingt, 즉 4 X 20이라 말한다. 90은 더 황당해서, quatre-vingt-dix, 다시 말해 4 X 20 + 10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정도면 단어가 아니고 마치 덧셈, 곱셈이 합쳐진 산수를 하는 것 같은 수준이다.


그런데 역시 불어를 사용하는 벨기에 또는 스위스에서는 이렇게 복잡하게 표현하지 않고, 좀 더 간단하게 nonante, huitante, septante처럼 한 단어로 각각 70, 80, 90을 표현한다. 왜 프랑스에서만 유독 그렇게 이상하고 복잡하게 숫자를 표현을 하는지 꽤나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고대 프랑스에서 사용하던 숫자 진법이 20진법이었는데 그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 한다.


즉, 10진법 기준으로 표현할 때는 10이 8개 있으면 80이 되지만, 20진법 기준으로는 20이 4개 있어야 80이 되니, 80을 4 X 20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90 역시 9 X 10이 아니고, 20진법 기준으로 4 X 20 + 10이 되었던 것으로, 20이 4개 있고, 여기에 10이 더 있다 이런 개념이다.


(프랑스 숫자 표기법 유래)

https://overseas.mofa.go.kr/oecd-ko/brd/m_8516/view.do?seq=1343830&srchFr=&srchTo=&srchWord=&srchTp=&multi_itm_seq=0&itm_seq_1=0&itm_seq_2=0&company_cd=&company_nm=&page=16


이러한 20진법 기준 숫자 체계가 당연히 외국인에게는 꽤 헷갈리는데, 소르본느 어학과정 다닐 때 학원 선생 중 이런 것으로 한국 학생 공격하는 것을 즐겨하는 선생도 있었다.

그 선생은 예를 들면 수업시간 중에, "불어는 한국어나 동양 언어처럼 관사가 없는 덜 발달된 언어와는 달라서...."라고 말하는 등, 한국이나 동양을 무시하는 듯한 꽤나 자극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던 선생이었다. 그런데 아마 그런 말을 하다가 어떤 애국심이 넘치는 한국 학생으로부터 수업 시간 중 심한 반박이나 공격을 받았던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그 이후에는 한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보복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 같은데, 외국인이라면 헷갈려 할 수밖에 없는 20진법 불어 숫자로 덧셈이나 곱셈 같은 산수 문제를 내고, 나와 같은 한국 학생을 지적해 정답을 말하지 못하거나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면 즐거워하거나 또 은근히 무안을 주기도 하는 그런 부류의 선생이었다.


그런 식으로라도 공격을 해서 본인의 과격한 표현으로 한국 학생에게 공격당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좀 받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그 선생이 수시로 갑자기 나를 지적해서 답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불어 숫자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던 내가 번번이 오답을 말해줌으로써 그 선생에게 어쩔 수 없이 한동안 꽤나 많은 즐거움을 주었던 씁쓸한 기억도 있었다.




숫자 표기도 다른 것이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7을 우리처럼 7이라고 적지 않고, 7처럼 중앙에 가로로 작대기를 하나 더 긋는다. 한국에서처럼 작대기 없이 7이라고만 적으면 거의 모든 프랑스인은 1로 인식한다.


7을 이런 식으로 표기하는 것은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그랬던 것 같은데, 이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공공서류 등 중요 서류에 7을 적으면서 무의식적으로 프랑스에서처럼 작대기를 하나 더 그었다가 숫자가 틀리다고 지적을 받아, 서류를 통째 다시 작성해야 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프랑스에서의 숫자 7 표기법)

https://hakmalyoung.tistory.com/m/270




숫자 천 단위에 콤마(,) 대신 점(.)을 사용하는 것도 우리와 달랐다. 즉 한국인은 4,300.50으로 적었지만 프랑스인은 4.300,50으로 적었다, 한국과는 반대로 천 단위에는 점을 소수점에는 콤마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왜 이러한 묘하고도 신기한 차이가 발생했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의문이다.


(국가별 숫자의 콤마, 점 사용법)

https://77spal.tistory.com/m/162




식당에서 식사 후 계산할 때, 프랑스에서는 앉은자리에서 계산서를 달라고 해서 계산을 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계산하는 식당은 꽤 드물고 대부분 나가면서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것도 차이가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서구는 물론 같은 동양권인 중국, 홍콩, 대만에서도 역시 프랑스에서처럼 앉은자리에서 계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독 한국만 그렇지 않은 점이 좀 특이하다.


한국에서는 식사를 마치면 그저 카운터에 가서 계산하면 되지만, 이와 같은 방식이 아닌 프랑스와 같은 지역에서는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식당 내에서 서빙을 위해 돌아다니는 종업원을 찾아서 계산을 해야 했는데, 손님들이 한참 많이 몰리는 시간인 경우에는 종업원들이 바빠 계산이 지연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항공기에 바로 탑승해야 하는 경우처럼 빨리 식사를 마치고 나가야 하는 경우에는 아예 식사 주문을 할 때 계산서를 미리 달라고 하고, 식사를 하면서 먼저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었다.




국가 간 교류가 활성화되고 세계가 점점 서로 가까워지면서 언젠가는 이런 국가 간 이문화 차이도 점차 소멸돼 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층을 1층으로 인식하고, 작은 단위부터 주소를 얘기하고, 콤마 대신 점을 사용하는 등의 차이들은 국가 간 사용하는 언어가 여전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앞으로도 꽤 오랜 기간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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