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내 연수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의 집합교육을 받기 위해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가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비행기를 타면 빠르겠지만, 연수생 시절 거의 백수와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 처지에서 굳이빨리 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 Paris에 거주하던 연수생 3명과 함께 상의하여평생 두 번 다시 가져 볼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 프랑스에서 독일로 가는 횡단 차량 여행을 이번 기회에 한번해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작은 국가인 룩셈부르크도 구경할 겸 룩셈부르크 쪽으로 약간 돌아서 독일로 이동해 갔다. 그런데 EU 소속 국가 간 이동 시 국경 통관이 없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실제 직접 경험해 보니 프랑스-룩셈부르크-독일, 3국 국경을 넘는 것이 너무 쉬워 신기할 정도였다. 그저 운전만 하고 계속 갔을 뿐인데, 어느 순간에 프랑스 도로가 룩셈부르크 도로로 바뀌었고, 또다시 독일 도로로 바뀌었다.
국경이 바뀌는 동안 통관절차는 아무것도 없었고, 잠시나마 차를 정차해야 하는 경우도 없었다. 그저 고속도로 옆에 서 있던 경찰 복장이 프랑스 경찰 복장에서, 순간 룩셈부르크 경찰 복장으로 그리고 다시 독일 경찰 복장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우리들이 탄 차가 이미 다른 국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말이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민족 역시 다르지만, 하나의 거대한 유럽연합(EU)이 실재하고 있음을 새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북쪽은 철통 같은 38선, 동서남의3면은 모두 다 바다로, 이웃국가와 완전히 차단된 곳에서 자라고 성장한 우리에게는 꽤나 신기하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가는 길에 식사도 할 겸, 온천으로도 유명한 독일의 바덴바덴(Baden-Baden)이라는 도시에 들렀다. 바덴바덴은 서울이 88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제84차 IOC 총회가 진행되었던 도시로, 당시 회의 진행상황까지 TV를 통해 여러 차례 봤던 기억 때문인지, 꽤 크고 화려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도착해 보니 도시의 규모도 꽤 작았고, 또 도착한 시점이 일요일 오전이라 더 그랬는지 거리가 너무 조용하고 사람도 거의 없어 마치 텅 빈 도시를 묘사한 영화 세트장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실제로 바덴바덴은 인구가 5~6만 명 수준에 불과한 꽤 작은 도시라는 걸 알게 됐는데, 서울에서 가장 인구가 적다는 종로구 인구도 약 17만 명이라고 하니, 바덴바덴 전체 인구가 종로구의 1/3도 안 되는 셈이었다.
텅 빈 유령도시 같았던 그곳에서 어렵게 지나가던 행인을 만나 근처에 식당이 있는지 영어로 길을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가 묻는 질문에는 전혀답을 하지 않고, 이렇다 저렇다 아무런 말도 없이 몹시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르는 꽤 애매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을 하던지 해야 하는데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우리를 쳐다보고만 있으니 우리 역시 좀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이상한 영어로 말을 하고 있어 우리의 말 자체를 그 행인이 못 알아듣는 그런 상황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열심히 불어를 배우고 있던 우리 일행 세 명 모두, 완전한 영어가 아니라 우리도 모르게 영어와 불어 단어를 마구 섞어서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동양인들은 아마도 전혀 없었을 인구 5~6만의 독일의 소도시에 갑자기 동양인 세 명이 불쑥 나타나서 일부는 영어 같기도 하고 또 일부는 불어 같기도 한데, 어쨌든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언어로 너무나도 태연하게 말을 걸어오니, 그 독일 사람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조차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새로운 외국어를 배울 때는, 기존에 배운 외국어는 한동안 구사하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곤 했었다. 어차피 모국어가 아닌 이상 뇌 속에서는 새로 배우게 되는 외국어가 기존에 배운 외국어의 자리를 점진적으로 대체해 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다. 물론 다행히 이러한 현상이 영원히 지속되었던 것은 아니고 새로 배우는 외국어 실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그 이후는 이런 현상이 상당 부분 해소되곤 했었다.
Paris에서도, 매일 4~5시간 이상 불어 수업을 받아 왔고,
또 프랑스 땅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많은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불어를 끊임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보니, 영어로 말한다고 하면서도 그 문장 안에 채워지는 단어 중 일부는 기존에 배웠던 영어단어가 아니라 가장 최근 열심히 배우고 있는 불어 단어가 무의식적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국, 영어로 말한다고 생각하고 말을 했는데, 실제 입으로 튀어나오는 말은 불어 단어가 섞여 나오거나, 아니면 말이 뒤죽박죽 돼서 이도 저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꽤 이상한 새로운 언어가 입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식당이 어디 있나요?"라는 질문은, 영어로는 "Where is the restaurant?"이고, 불어로는 "Où est le restaurant"일 텐데, 이 문장의 영어 단어와 불어 단어를 뒤죽박죽 섞어서 말해 "Where est le restaurant"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비슷한 현상을 나중에 중국 북경에서도 경험했는데, 부임 초기 몇 달 동안, 안 되는 중국어 하느라 스트레스받다가, 어느 날 호텔에서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고 호텔 종업원이 친절하게도 영어로 말을 해 주었는데, 답을 해야 하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텅 빈 것 같이 영어 단어가 단 한 마디도 안 나오고 중국어 단어만 그것도 완전하게 전부도 아니고 아주 일부만 자꾸 떠올라 매우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초기에는 결국 기존에 어느 정도 구사하던 영어도 제대로 말이 안 되고 또 새롭게 배우는 언어도 역시 아직은 원활히 구사하지 못해 한동안은 거의 반벙어리 신세처럼 지내야 하는 그러한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던 것이다.
언어 학습에는 신비한 부분이 많다. 90년대 중남미 칠레에 근무하던 주재원 얘기인데, 그곳에서 태어난 주재원 아들이 이미 말을 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한마디도 말을 하지 못해, 언어구사 능력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주재원 부부가 꽤 많이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밖에서 자기 또래 동네 아이들과 그 아이가 노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던 그 아이가 동네 친구들과는 칠레의 언어인 스페인어로 아무런 문제도 없이 너무도 말을 잘하더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아이가 집에서 말을 못 했던 이유는 집에서 엄마 아빠는 항상 서로 한국어로만 대화할 터이니, 부모와 있을 때는 부모가 사용하지 않는 스페인어는 안 나오게 되었을것이고 또 정작 한국어는 두 부모가 대화하는 것 이외에는 주변에서 접할 기회가 없어 제대로 습득이 안되어 있으니, 역시 한국말도 안 나오고 그랬던 것 같다.
어리면 어릴수록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 어릴 때 배운 언어나 단어는 완전히 잊은 것 같아도 잠재의식 속에 깊게 박혀 있어 언젠가는 다시 쉽게 입으로 옮겨질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Paris에 유학 와 있던 대학 동창이 그곳에서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 아들이 말을 터득하기 전 부모가 학위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어린 아들은 불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이후, 어느 날 5~6세 정도로 성장해 한국어를 꽤 잘 구사하던 아들이 먹는 '밤'을 보더니 갑자기 불어로 밤을 의미하는 단어인 '마롱(Marron)'이라고 불러 부모가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프랑스 체류기간 말은 전혀 못 했지만, 유아이던 그 시절 귀로 자주 들었던 마롱이라는 단어는 그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었고, 어느 날 실물을 보자 잠재의식 속의 그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오게 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나이가 들어 갈수록 새로운 언어는 정말로 습득하기가 어려워지는데 바로 나 자신이 그 실제 증거다. 가장 젊었던 시절인 30대 중반 잠시 거주했던 프랑스의 불어가 비록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 체류했었음에도 말하기가 가장 편했고 그다음으로는 좀 더 나이가 들은 이후 40 초반에 주재했던 캐나다의 언어 영어였다. 캐나다에는 프랑스에서 보다 3배 정도 더 오래 거주했음에도, 캐나다의 언어인 영어는 결코 불어만큼 구사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끝으로 40대 중반 즈음 한참 나이가 들어서야 거주하기 시작했던 중국의 중국어는 중국에 캐나다에서보다도 무려 3배 이상 더 오래 거주했었지만 영어보다도 더 약해서 가장 못하는 언어였다.
프랑스에서 태어나면 특별한 불어 교육을 받지 않아도 어린 나이에 이미 불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데 별 문제가 없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별다른 학습이나 노력 없이도 자연히 그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 신기한 능력을 신이 인간에게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신이 허용한 그 능력이 세월과 함께 이미 상당 부분 막혀버린 이후라 그런지 매우 힘들다.
자신들의 언어가 국제 언어처럼 사용되는 미국인은 외국어 잘 안 배우고 잘 못하기로 유명하다 한다. 하지만, 한국인은 예나 지금이나 나이 든 베이비부머 세대부터 젊은 학생까지 변함없이 영어나 중국어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외국어를 참 열심히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가진 것 없는 나라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 남고 버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볼 때 별다른 노력도 안 하고 어린 시절 자연스레 습득한 언어를 전 세계 여기저기에서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해외생활을 할 수 있고 돈까지 벌 수 있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젊은이들은 어찌 보면 '언어 금수저'로 태어난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단순히 말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서 통용되던 새로운 개념과 사고방식까지 함께 배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즉, 하나의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기존에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가난한 한국에서 태어나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양한 외국어를 배워 왔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이 지구 상의 다양한 문화와 세상을 접해가는 과정이며, 그만큼 자신의 사고 영역과 생각이 풍부해지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한자의 '道'는 결코 영어나 불어로 완전히 번역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道'라는 한자의 의미는 중국 문화와 중국 한자를 통해 배워야만 그 완전한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쪽 팔리다'라는 한국 문장도 굳이 번역하자면, 불어는 'perdre la face', 영어는 'lose face', 중국어로는 '丢面子(diumianzi)'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쪽 팔리다'라는 한국 말이 갖고 있는 완전한 의미는 결코 이러한 번역 어느 것으로도 100% 전달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쪽 팔리다'라는 그 표현에는 문자적 의미 외에, 그 말이 만들어진 한국 사회의 사고방식, 문화, 감정 심지어 때로는 역사까지 함께 그 문장에 녹아서 들어있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역시 그렇다. 불어 똘레랑스(Tolérance)도 '관용'이라는 한국어로 번역될 수 있겠지만, 그 번역된 한글 단어는 불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뜻 모두를 그대로 포함하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각 국가의 문학작품은 그 작품이 원래 쓰인 언어로 읽어야만 그 느낌을 충분하고 제대로 전달받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를 외국어 번역본으로 읽을 때 한국인의 삶이나, 한국 농촌의 정서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라면, 영어, 중국어, 불어 등 외국어로 번역된 글만으로는 그토록 많은 감성적인 한국 단어로 구성된 황순원의 '소나기'의 참된 내용은 결코 제대로 전달될 수 없는 것이다.
소나기, 먹장구름, 징검다리, 조약돌, 메밀꽃, 원두막, 개울, 서당골, 소녀, 윤초시댁 .... 등등의 단어에는 이런 단어들이 문장으로 구성되기 이전에 이미 단어 그 자체에 번역하기는 어려운 한국인의 정서가 깊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한국 교민이 많지 않지만, 나중에 주재 근무한 캐나다에는 한국 교민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부모와 함께 캐나다로 온 교민 자녀들은, 나이가 꽤 어리다 보니 당연히 부모보다 훨씬 더 빨리 영어를 습득한다.
이민 초기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쳤지만, 오래지 않아서 온 가족이 모여 저녁에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때 부모는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데, 자녀들은 박장대소하며 난리 치고 웃는다고 한다. 상황이 역전돼서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영어 유머를 부모는 이해하지 못했던 반면 자녀들은 이미 모두 알아듣고 이해했다는 얘기다.
재미있는 것은 이제는 영어도 한국어만큼 편해진 그런 교포 2세들이 자기들끼리 말을 할 때도 영어로만 말을 하지 않고 때로는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즉 영어로 말하다가 갑자기 한국어로 바꾸고, 또 갑자기 영어로 돌아가곤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던 것이다. 그들과 같이 얘기를 하다 보면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너무 헷갈려서, "그냥 한 가지 언어로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그들의 답은 그렇게 하려 해도 그게 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어떤 말은 한국어로 가장 적절하게 표현이 되는 반면, 다른 어떤 말은 영어가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즉 위에서 예를 든 "쪽 팔리다" 같은 표현은 한국어로 말을 해야만 그 의미가 가장 완전하게 전달되고, 만일 번역해서 영어로 표현하면 그 원래 의미가 모두 살아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북미에서는 가장 흔하게 쓰이는 단어라는 'Fuck'도 원래 영어 단어 'Fuck'으로 말할 때 의사 전달이 가장 확실하며 이것을 한국어와 같은 외국어로 번역해서 표현하면 정말 꽤 이상하고 어색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번역은 결국 원래의 완전한 의미의 전달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과 캐나다 두 사회를 경험하고 그 두 사회 언어에 모두 능숙한 교민 2세들은 각각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단어나 문장의 깊은 의미를 익히 알고 있는 만큼, 그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언어를 선택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최적의 표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Paris의 어학원에서 불어를 배울 때 한 반에 학생들이 보통 10명 정도였는데 초기에는 내가 반에서 줄곧 1등을 했었다 대학 시절에 무려 4년씩이나 불어를 전공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스위스에서 온 스테판이라는 친구 성적이 점차 올라가더니, 6개월 정도가 지난 이후에는 줄곧 스테판이 1등을 하고 나는 2등으로 밀렸다.
이 결과를 보고 불어 선생은 유럽과 동양 간의 문화 차이로 인해 야기된 결과라며 이러한 경우가 매우 흔하다고 했다. 즉, 서구 문화 속에서 자라지 않은 동양인학생은 초기에는 열심히 하는 노력으로 불어를 배울 수 있지만 일정 한계를 넘어 좀 더 복합적이고 깊은 의미가 담긴 고급 불어 단계로 넘어가면 문화 사회적으로 불어와 프랑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같은 서구 문화권에서 자란 스테판 같은 유럽인이 훨씬 유리하고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동양인은 점차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한동안 영어 교관을 한 적이 있는데, 미군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한 군인이 "수고했습니다"라는 말은 영어로 어떻게 말하느냐고 질문해 온 적이 있었다. 고민하다 결국 답을 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한국어를 영어로 직역하려 했기 때문에 적당한 답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미국인 문화와 사회에서는 우리처럼 "수고(受苦)했다"고 표현하지 않고 다르게 표현할 것이다. 예를 들면, "You did a good job"이나 또는 단순히 "Thanks a lot" 같은 것도 동일한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수고했다"라는 단어 의미 그대로 번역을 하려 했으니 적당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로는 아침에 "안녕하세요?"라고 한다고 안녕(安寧)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영어로 직역해서 "Are you in peaceful situation?"이라고 아침 인사를 한다면 미국인은 그 말을 인사말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너 어디 아프냐?" 또는 "너 정신상태 괜찮으냐?" 등 전혀 엉뚱한 의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인의 문화와 사회에서는 "좋은 아침!(Good Morning)"이라고 말하지, 결코 "밤새 별일 없이 무사하게 안녕히 있었느냐?" 이런 식으로는 묻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일본인이, 누가 들어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강한 일본인 억양으로, "Big street is over there?"라며 내게 길을 물어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가 비록 전혀 틀린 단어를 사용해서 질문했음에도 나는 무엇을 물어보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답을 하려다 보니 뭔가 좀 이상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Big이 아니라 Main이라는 단어를 써야 정확한 영어 표현임을 깨달았다.
그녀가 그렇게 틀린 영어 단어를 선택해 질문을 했던 것은 일본어로는 Main Street를 '큰 거리'라고 표현하는데 그 표현을 영어로 그대로 직역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일본인에게 답을 해줄 때는 "Yes, main street is over there"라고 정정해서 답을 해 주었는데, 그 일본인이 틀린 단어를 사용했음에도, 내가 혼동 없이 바로 알아들은 이유는, 한국어에서도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대로(大路)', '대도(大道)' 또는 순수 한국어로 '큰길' 등, 모두 크다는 뜻의 문자를 사용해서 중심이 되는 거리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크다는 의미로는표현하지 않고, 중심을 의미하는'Main'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한국어나 일본어 단어를 그대로 영어로 직역해 'Big Street'라 하면 정작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미국인은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결국 우리 단어나 문장을 그대로 직역하려고 하지 말고 그들이 말하는 표현법을 찾아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어, 예를 들어 불어를 배울 때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는 불어로 말하며 서로 의사소통을 꽤 잘하는데 정작 그옆에 있던 프랑스인 선생은 한국 학생들이 주고받는 그 불어가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못 알아듣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현상도 이런 배경으로 해석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되는 것 같다. 한국 학생들은 'Big Street'라고 틀린 단어를 선택해 말을 해도 모두 다 잘 알아듣는 반면 미국인은 못 알아듣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벨탑 사건 이후 신은 인간이 서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도록 세상의 언어를 여러 가지로 갈라놓았다고한다. 그런데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인간의 언어는 전지전능하신 신도 관심을 가져야 할 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중요한 언어가 갖고 있는 깊은 의미와 그런 언어를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