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못하는 한국인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1편 Paris-12)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Paris



12. 한국어 못하는 한국인


2017년 1월 프랑스 법원은 32세의 니콜라 모로(Nicolas Moreau)라는 프랑스인에게 10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30세의 그의 동생 플라비엥 모로(Flavien Moreau)는 그보다 먼저 이미 2014년 11월에 징역형 7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었다. 두 사람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유는 IS, 즉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에 가담하여 그들의 테러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IS에 가담했던 백인계 프랑스인이나 아랍계 프랑스인이 수 없이 많은데, 굳이 이 두 사람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안타깝지만 완전한 프랑스 이름을 갖고 있고, 한국 이름은 기억도 없는 이 두 사람은 혈통적으로는 순수 한국인으로 한국인 입양인 출신 형제였기 때문이다. 아래 기사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의 외모는 완벽한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한국계 형제의 비극)

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2488290

2. https://www.google.com/amp/s/www.francetvinfo.fr/monde/terrorisme-djihadistes/qui-est-flavien-moreau-le-premier-jihadiste-francais-condamne-pour-s-etre-rendu-en-syrie-tout-juste-libere-de-prison_3263157.amp


언론에 게재된 기사 내용에 의하면, 그들 형제는 프랑스로 입양된 이후 어린 시절부터 양부모의 불화와 주변의 인종 차별로 방황하기 시작했으며, 사춘기 이후에는 소년원이나 교도소를 이미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종교까지도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에 IS에 가담하여 시리아, 이라크 등지의 IS 기지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그들 형제는 비록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고 프랑스인 양부모에 의해 프랑스에서 성장했지만, 검사가 취조할 때 프랑스에 대해서는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


혈통적으로는 한국인이었지만 그들 역시, 인종차별 등으로 뿌리 깊은 반(反) 프랑스 정서를 갖게 되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에는 테러리스트가 되는 프랑스의 일부 아랍계 주민들 후손과 별 차이가 없는 과정의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들 형제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의 시련은 오히려 아랍계 이주민 후손보다 더 컸다 한다. 왜냐하면 IS 가담 후 시리아 IS 기지에서 조차도 다른 프랑스 출신의 IS 대원들과 달리 외모가 구별되는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인종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인으로부터 받던 인종 차별을 이제는 아랍인으로부터 받게 된 셈이다.




반면 최근 한국 언론에도 소개가 되었지만 이들과는 반대로 비록 한국에서는 버려졌던 고아 신세였지만 멀고 먼 프랑스 땅으로 입양되어 프랑스 장관급에 해당되는 고위직에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한 한국 입양인 출신들도 있다.


최근 수치는 잘 모르겠지만, 한때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한국 입양인을 수용한 국가가 바로 프랑스였다 한다. 내가 Paris에 체류하던 시절인 90년대 말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무려 13,000여 명에 달하는 한국 입양인 출신 프랑스인이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는데, 당시 프랑스 내 한국인 교민 수 전체가 약 만 명 정도로 추산됐다 하니, 프랑스에는 한국인 교민 수보다 더 많은 한국 입양인 출신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 중 20여 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는 프랑스 정부 장관이 되어 있고, 누군가는 테러범이 되어 프랑스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것이다.


(90년대 말 프랑스 교민 인구 분석 자료)

http://www.coreens.com/jalyosil/702


장관급 공무원이 된 한국인 입양인 중 한 명은 7살에 프랑스 가정에 입양되었다고 한다. 7살이면 당연히 한국어를 할 수 있었을 나이였고 또 양부모도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그에게 프랑스에서도 계속 한국어를 배우라고 권했다 한다. 하지만 그는 혹 한국어를 하게 되면 자신을 버린 한국으로 자신이 다시 보내질까 두려워 한국어를 더 이상 하려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는 한국어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한다. 그만큼 자신이 출생한 고국 땅에 대한 쓰디쓴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한국 입양인 출신 장관급 공무원은 태어난 지 불과 3~4일 만에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이 발견되어 고아원으로 보내진 후, 생후 6개월 너무도 어린 나이에 이미 프랑스로 입양되었다 한다. 당연히 한국어도 전혀 못하고 또 한국에 대한 기억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인데 이 분은 국내 언론과 인터뷰 시 한국의 원래 부모는 찾을 생각도 없으며 자신은 뼛속까지 철저한 프랑스인이라고 굳이 강조해서 언급한 바 있다.


(뼛속까지 프랑스인)

https://m.blog.naver.com/g_comics/222202251407


이제는 이 두 분 모두 프랑스에서 나름 성공한 경우겠지만 이처럼 한국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좀 남다른 유별난 기억과 감정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살던 Paris 아파트 바로 위층 가정도 한국 출신 어린 입양아를 기르는 프랑스인 가정이었다. 90년대 집계된 프랑스 내 13,000여 명의 한국 출신 입양인 중 한 명이 그 집에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내가 한국인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 집 부인이 어느 날 집으로 나를 찾아왔는데, 한국인 아이를 입양해서 같이 살고 있는데 도움이 필요하니 좀 와 달라고 했다.


아직 말도 못 하는 나이지만 항상 밝은 표정이었던 그 어린 한국인 입양아가 프랑스로 입양되어 온 이후에는 왠지 계속 우울해하는 것 같아, 혹 한국 전통 음악을 들려주면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음악을 들려주려는데 어떤 한국 음악이 좋은 지 한국인인 나의 조언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직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그 어린 한국인 입양아를 자신의 친자식처럼 그렇게까지 세심하게 돌봐주려 하는 그 프랑스 부인의 마음 씀씀이가 같은 한국인으로서 참 고맙고 감사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골라 달라고 보여주는 CD는 하나 같이 중국이나 일본 노래였고, 한국 노래는 단 하나도 없었다. 결국 이 노래들은 모두 한국 노래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의 답은 같은 동양인데, 한국, 중국, 일본 등 전통 노래는 대략 비슷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선진국인 유럽의 음악들은, 샹송(Chanson, 프랑스), 칸죠네(Canzone, 이태리) 또 팝송(Pop Song, 미국/영국) 등, 국가별로 세분화해서 차이가 있고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아프리카나 중동 등 지역의 음악은 그 지역을 세부적으로 구분하지 못하고 통째로 뭉뚱그려 하나로 보는 그런 현상과 비슷한 현상인 것 같았다.


그 부인에게 프랑스 샹송과 영국 팝송이 같은 유럽 지역에 속하는 노래니 결국 비슷한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면 아마도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인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마음씨 고운 프랑스 부인에게도 한국은 그저 중국, 일본과 그다지 구분되지 않는 동아시아에 있는 중국 또는 일본과 비슷한 작은 국가였을 뿐이었던 셈이었다.


결국 마땅한 음악을 골라주지는 못했고, 한국 전통 음악은 중국이나 일본 음악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그 말만을 남기고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 한국인 입양아가 다행히 자상한 양부모를 만난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어린 나이에 이 먼 프랑스까지 와서 앞으로 성장 과정에서 프랑스의 노래도 아니고, 중국 혹은 일본의 노래를 마치 고향 노래처럼 들으며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왠지 가슴 한쪽이 먹먹하고 또 답답했다.


아울러 서로를 전혀 이해 못하는 양부모와 입양아 간 그런 오해가 반복된다면, 그 양부모가 과연 언제까지 인내심을 갖고 그렇게 자상하게 그 입양아를 배려해 줄 수 있을지도 사실 의문이었다.


그 집을 떠나면서 과거처럼 6.25 전쟁통이나 먹을 것조차 없던 참혹한 시절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한국은 아직 자동차나 전자제품도 아니고, 입양인 수출 상위권 국가라는 이상한 타이틀을 갖고 있는지 나 역시 한국인으로서 생각을 해 보기도 했고 좀 부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마치 돌아가는 내 등 뒤에서 그 부인이 "그런데 그렇게 다르다고 주장하는 너희 민족, 너희 나라는 왜 전 세계 여기저기 너희와 다른 국가에 그렇게 많은 너희 아이들을 수출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져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국인 입양인 관련 기사)

https://m.pressian.com/m/pages/articles/37263


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한국인 입양인 출신 장관급 공무원처럼, 한국인 그것도 태어난 지 3~4일 만에 부모에 의해 길에 버려진 아이가 한국 가정에서는 아무도 입양하지 않는 실정에서 해외로 입양되는 것도 막는다면, 가정이라는 느낌은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평생 한국의 어느 고아원에서 살면서 성장해야 했을 텐데, 해외입양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해외입양을 막고 그렇게라도 한국 고아원에서만 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 주장이 될 수 있는지 사실 의문이기도 했다.




외모는 한국인과 너무나 똑같아 자주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사실은 사고방식, 언어 등 모든 면에서 철저한 프랑스인인 한국 입양인 출신 대학생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약 10 세라는 늦은 나이에 프랑스로 입양되어 왔다고 하는 데도 그녀 역시 한국어를 전혀 못했고, 당시 한국어를 처음부터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녀와 만났을 때 나름대로는 한국인 혈통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해 준다는 생각에서 그녀에게 한국의 경제 성장, 강한 민족정신, 우수한 문화 등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내 얘기를 조용히 다 듣고는 내가 강조했던 한민족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당신이나 또 나나 낮은 코와 튀어나온 광대뼈가 참 비슷하다"는 다소 엉뚱한 말을 불쑥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내가 그렇게 자랑하던 그 대단하다는 한국인이라는 민족이 자체적으로 입양인을 흡수하지도 못하고, 외국의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자신 같은 입양인들을 수출하는 바로 그 민족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 얘기는 하지 못하고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려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한국인 입양인 출신 두 명의 장관급 공무원의 한국 이름은, 원래 'OO복', 'OO숙'이라 한다. 한국에서는 매우 흔하고 친근한 이름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프랑스 입양 이후, 자신들의 원래 한국어 이름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그들 양부모의 프랑스 성(姓)과, 그 양부모가 지어준 프랑스식 이름으로만 평생을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비록 그들이 완전히 바뀐 이름으로 프랑스의 장관급 직책에까지 올라가는 등 나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성공이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 혹시 잠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잊혀간 'OO복', 'OO숙'이라는

원래 그들의 한국식 이름의 흔적과 상처까지도 모두 상쇄할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어쨌든 프랑스는 90년대 기준 13,000명이나 되는 오갈 곳 없는 수많은 한국인 입양인들을 받아주었던 국가다. 그런데 입양해서 결과적으로 테러리스트로 키운 경우도 있고, 반면 장관급 공무원으로 키워준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프랑스의 가정들이 그 많은 한국인 입양인들을 거두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해야 할지 아니면 그 정반대의 표현을 해야 할지 잘 판단이 안 된다.


아마도 결국에는 총체적으로 프랑스라는 하나의 국가 전체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입양을 결정하고 키워준 각각의 프랑스인 양부모 개인에 대해 고마워해야 할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주변에서 입양을 시도했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듣는다. 이제는 과거와는 다르게 굳이 해외로 보내지 않고도 국내 한국 가정에서 한국인 고아를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이 어느 정도는 갖추어져 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입양을 시도했던 그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입양 절차가 꽤 어렵고, 요구하는 것도 너무 많아 결국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인간으로서의 어린아이 평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양부모를 찾는 일이니 당연히 양부모에 대한 검증 절차가 결코 부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국내 입양을 늘리기 위해 그 절차를 혹 좀 더 개선해야 할 부분이 혹시나 있지는 않은지 한 번은 더 점검할 필요도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인종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적어도 한국에 있는 한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자랐다면 프랑스의 감옥에 있는 두 한국인 출신 입양인들처럼 성장 과정 내내 '인종차별'로 야기된 극심한 갈등을 겪으며 결국에는 가득한 좌절과 증오 속에서 아랍인의 테러리스트로 활동하는 그러한 길을 밟게 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국내 입양 절차 관련 기사)

1. https://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8330.html

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4497915?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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