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에디뜨 피아프(Edith Piaf)'가 부르는 샹송들이 영국의 '비틀스(Beatles)'가 부르는 노래와 동일한 장르의 음악이라고 얘기하면, 프랑스인 누구도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프랑스와 영국 음악은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심하면 그렇게 말하는 당신 참 무식하다고까지 언급하는 프랑스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요즘은 좀 달라졌겠지만, 1995년 내가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었을 당시만 해도 한국은 유감스럽게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잘 모르는 작은 국가'로만 인식되어 국가 및 문화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프랑스인들로부터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흔했다. 물론 '엘리트'라 불렸던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이와는 달랐지만 일반 대중은 대다수가 그랬다.
역시 큰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들이지만, 스위스, 싱가포르, 이스라엘 같은 한국보다 훨씬 작은 나라조차도 주변의 국가들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인구, 영토 및 경제 규모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한국에 대해서만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었다.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은 한국을 몰랐고, 설명을 해도 그저 중국 또는 일본과의 연장선 상에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심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 설명하면, 바로 이어지는 다음 질문은 거의 항상 "그럼 한국은 일본과 더 비슷하냐, 아니면 중국과 더 비슷하냐?"라는 것이었다.
프랑스를 독자적 국가 및 문화로 이해하지 못하고 "독일과 비슷하냐? 스페인과 비슷하냐?"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은 경우인데, 그러한 질문을 프랑스인에게 할 경우 프랑스인은 거의 모두가 그러한 질문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한국에 대해서는 동일한 질문을 자주 했던 것이었다.
유독 프랑스인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불어 학원에서 만난 외국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중남미의 어린 학생들, 특히 일본계 이민이 많은 브라질에서 온 학생들도 "한국은 중국과 비슷하냐? 일본과 비슷하냐?"라는 비슷한 질문을 해온 적이 있다.
그러던 중 그들이 양파를 한국어 단어로 말을 해 보라고 해, 한국어로 발음해 주었더니 그 발음이 일본어보다는 중국어 발음과 유사한 것 같으니 한국은 중국과 비슷하다고 단정 짓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양파라는 단어 하나로 한국이 중국과 비슷한 나라로 판결받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나중에 알았지만 중국어로 양파는 洋葱이라 쓰는데 발음은 '양총'으로 우리말 '양파'와 다소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어의 마늘, 파, 쌀, 콩, 고추, 무 같은 식생활과 밀접한 대다수 음식재료 이름은 모두 한자가 없는 순수 한국어로, 쑤완(蒜), 총(葱), 따미(大米), 따도우(大豆), 라지아오(辣椒), 류오보(萝卜) 등으로 발음되는 중국 단어 및 발음과는 전혀 다른데, 유독 '양파'만이 한자에서 온 단어가 아닌 것 같음에도 그 발음이 중국어와 유사한 것은 꽤 특이하다.
아마도, 순수 한국어 '파'에 해외에서 왔다는 의미의 한자 '양(洋)'이 붙어 '해외에서 들어온 파'라는 의미로 앞 자는 한자, 뒷 자는 순수한 한국어가 합쳐져서 '양(洋) 파'라는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앞의 한자 부분에 중국어 발음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1995년만 해도 국가 위상이나 경제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일본은 아직은 중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게 앞서고 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이렇게 단순 논리로 말하는 것이 좀 우습기도 하지만, 당시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프랑스인들 포함 대다수 외국인의 사고방식은 일본과 비슷하다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였으며, 이와 반대로 중국과 비슷하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자동차, 전자 제품 등을 비롯해, 일본 만화, 일본 미술까지 그 시절 일본의 많은 것들이 이미 Paris와 프랑스를 휩쓸고 있었지만, 중국과 연관된 것은 중국 식당 외에는 그저 단순 가공되는 최저가 싸구려 제품에서만 찾을 수 있던 시절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그렇게나마어떤 형태로든 접촉이 있어구분하고 있었던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거의 없고 한국 문화를 경험해 볼 기회도 전혀 없어 그 실체가 잘 판단이 안되니, 좀 더 잘 알고 있던 두 나라 중에 어느 나라와 더 비슷하냐에 따라 한국을 판단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안도라(Andorra)라는 작은 국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한국인이 이 작은 나라를 그나마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프랑스나 스페인을기준으로 "프랑스와 비슷하냐? 스페인과 비슷하냐?"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었던 셈이다.
결국 한마디로, 독자적 문화와 경제력을 갖춘 별개 주체로 한국을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니, 중국과 일본의 연장선상에서 인식하려 한 셈인데, 공교롭게도 마침 그들이 질문했던 '양파'라는 단어 발음이 중국어와 비슷하니, 어린 중남미 학생들에게는 한국은 일본과는다른 중국과 비슷한 낙후된 국가라는 황당한 결론이 내려진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 비록 중국이나 또 일본에 비해 작은 국가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독자적 언어, 문화, 역사가 있는 독립 국가인데, 두 개의 이웃 국가 중에 어느 쪽과 더 비슷하냐고 묻는 것은, 물론 질문하는 사람의 본의가 아닌 경우가 있을지 몰라도, 이미 그 자체로 한국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실례되는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인 등 외국인들의 이러한 왜곡된 인식과 질문 관행에 대해 너무도 과감하고 과격하게 반박했던 한 한국 여학생의 유명한 일화가 있었다.
같은 반에 있는 한 유럽 학생이 그 여학생에게 "너 혹시 일본 사람이냐"라고 별생각 없이 질문한 적이 있다 한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받은 한국 여학생이 갑자기 욱해서 "나는 너를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질문하는데, 우리와 같이 생긴 동양인들이 일본인들만 있는 것이 아님에도 너는 왜 나보고 일본인이냐고 질문을 하느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질문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버럭 화를 내면서 한동안 열변을 토했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에 불필요하게 크게 화를 낸 경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도 외국에 거주하면서 막상 그런 질문을 택시, 학원, 은행, 식당 등 도처에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그 짜증이 점차 누적되어 참다 참다 결국 어느 날 그렇게 갑자기 폭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실제 경험을 통해 충분히 느끼기도 했었다. 아마 그 여학생 역시 필경 그러한 질문을 받는 것이 처음은 아니고, 누적될 만큼 받은 상태에서 또 같은 식으로 질문을 받으니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2007~2008년 대만에 주재 근무할 때였는데, 당시 어디에 가더라도 내 어눌한 중국어 발음을 들으면, 대만인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는데, 그다음부터가 문제다. 외국인인데 동아시아인처럼 생겼으면, 그다음은 바로 일본인으로 간주를 해서 일본어로 내게 말하기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중국어는 그들만큼은 못해도, 배웠으니 그나마 떠듬떠듬 대화할 수는 있는데, 일본어로 말을 하면 일본어를 못하는 나로서는, 와사비, 사시미, 벤또, 와리깡 등등 한국에서도 예전 한때 또는 요즘도 가끔 사용하는 일부 단어를 빼고는 도통 알아들을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말을 알아듣고, 못 알아듣고를 떠나서 한국인에게 국제 언어로 인정받는 영어도 아닌 일본어로 말하는 것이 기분 나빴다. 물론 일본인으로 오해해서 그랬을 것이지만, 동아시아인처럼 생긴 사람이 일본인밖에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남한 인구만도 무려 5천만이 넘는데....
결국 나도 모르게 그간 누적된 감정이 터져, 어느 상점에서 "나 일본 사람 아닙니다!"라고 얼굴까지 붉히며 큰 소리로 답한 적이 있는데, 분명 그 대만 점원은 일본인으로 보이는 손님에게 좀 더 친절하게 대하려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어서 좀 많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일본이 인구 면에서도 남한의 2배 이상이고, 경제적으로 역시 훨씬 더 부유하다고 하더라도, 잘 모르면 무조건 일본인으로 간주하려는 그들의 인식이 자존심 상하고 참기 힘들었다.
그런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위해, 한때는 심지어 대만에서 거리에 나설 때, "我不是日本人(나 일본인 아닙니다)"라는 중국어 문구를 적은 띠나 명찰을, 머리에 두르거나 가슴에 부착하고 다니는 것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택시 안에서 동료와 한국말로 대화를 하고 있는 데도, 일본 사람이냐고 질문하는 대만 택시기사도 있었다. 받침이 거의 없는 일본어와 받침이 많은 한국어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니 신기할 정도였다. 그뿐인가, 한국 사람이라고 답하면, 마치 너희들이 뭔데 감히 그러느냐는 듯이 "너희들은 왜 일본을 싫어하냐"라고 묻는 기사도 있었다. 난 택시 안에서 일본이 싫다는 말을 한 적도 없고 일본이란 단어는 아예 꺼내지도 않은 채 그저 한국인이라고만 답을 했을 뿐인데도 그랬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일본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대만에서는 예외적인 경우지만, 반대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택시기사가 묻길래, 한국사람이라 했더니, "나도 일본을 싫어한다"라고 말하는 기사도 있었다.
마치 내가 일본을 싫어한다고 말했던 것에 동의하는 것처럼 "나도"라고 답을 한 것인데, 실제로는 이번에도 역시 나는 그 택시기사에게 일본을 싫어한다는 말은 물론 일본에 대한 나의 의견을 단 한마디도 피력한 적도 없었음에도 그랬다. 대만에는 "한국인 = 일본을 싫어한다"는 확고한 선입견이 있어서 그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 같았는데대만인이 일본에 호감을 갖고 있는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경우가 일반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대만 편 글에서 언급할 예정이다.
어쨌든 인구 14억의 중국과 인구 1.3억의 일본 그 거대한 두 개 국가 정중앙에 한국이 끼어 있는 얄궂은 운명 덕분에 한국이나 한국의 문화를 중국이나 일본의 한 부분인 것처럼 생각하거나 또 일본이나 중국의 연장선에서만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에 접근하려는 프랑스인이나 외국인이 결코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프랑스라는 국가가 결코 영국과 비슷하거나 독일과 비슷한 국가가 아니고 그저 프랑스이듯이, 한국도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될 필요 없이 그저 한국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 그동안 우리가 스스로 존재감을 만들어 가지 못했고, 분명한 고유문화 보유국임을 전 세계에 인식시키지 못해 왔기 때문에 아직도 여전히 해외에서 그러한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지리적 운명이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세계적 4대 초강국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것이 현실이라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어 섬처럼 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싱가포르도 인구 1억 이상 되는 주변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존재감은 너무도 뚜렷하다.
누가 이스라엘을 주변 아랍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겠으며, 누가 싱가포르를 주변 국가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와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려 하겠는가?
유럽의 작은 국가 스위스도 역시 마찬가지다 독일, 프랑스, 이태리라는 3대 강국에 포위되어 있지만 스위스를 주변의 3대 강국과 혼동하는 사람은 정말 극히 드물 것이다.
이러한 국가들이 한국과 달리 이처럼 뚜렷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이유가 주변국보다 인구가 많거나 국토가 넓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스위스와 이스라엘 인구는 8백만 정도며 싱가포르는 그 보다 더 적어 6백만 수준으로, 인구 5천만이 넘는 남한과는 비교조차 안되고, 서울시 인구보다도 작다. 국토면적 또한 3개국 공히 한국보다 훨씬 작다.
그런 그들도 분명한 존재감을 만들어 왔는데, 그들보다는 훨씬 더 인구도 많고, 경제규모도 결코 적지 않은 한국만은 여전히 주변국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뚜렷한 존재감을 만들어 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는 이스라엘, 스위스, 싱가포르의 사례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결코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노력이 그만큼 충분하지 못해서였다고 밖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2019년 현재 한국에 대한 세계의 인식은 1995년 즉 내가 Paris에 체류하던 시절인 20여 년 전과는 꽤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일부 외국인들이 과거처럼 중국이나 일본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을 인식하려 한다면, 환경이나 지리적 위치 등 외부의 요인을 탓할 것이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더 노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스위스, 싱가포르 그 작은 국가들의 너무 선명한 정체성이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